본문 바로가기
영화읽기

원티드 : 잔혹한 신을 섬기는 형제들

by 늙은소 2009. 1. 2.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00년 전부터 활동해온 비밀조직 프래터니티(형제회)는 암살해야 할 대상의 이름을 직조하는 운명의 기계로부터 명령을 받아, 이를 실행하는 암살조직이다. 세계의 유지에 방해가 되는 대상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평화를 추구해온 이들의 이상은, 청교도적인 종교관과 결합하며 선민의식으로 발현되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직원이 차례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들 중 최고의 실력을 지닌 ‘Mr. X’가 암살되며 조직은 위기에 처한다.

한편 평범한 회사원 웨슬리 깁슨(제임스 맥어보이)은 신경발작을 억누르며 사회생활을 이어나가느라 매일이 고통스럽다.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와 그런 자신을 비웃으며 이용하려고만 드는 동료, 자신의 친구와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애인까지. 그는 분노와 좌절을 구분하지 못할 때마다 찾아오는 신경발작을 잠재우기 위해 약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형제회의 암살단원 중 한 명인 폭스(안젤리나 졸리)가 찾아와, 그의 아버지가 형제회의 조직원이며 최근 암살되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웨슬리로 하여금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암살단에 가입하고, 그를 죽인 암살자 크로스에게 복수할 것을 제안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만 하던 웨슬리는 억눌려 있던 킬러의 본성을 깨닫고 프래터니티를 찾아가 암살자가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과정에 참여한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의 유품과 재산을 상속받은 웨슬리는 복수를 위해 크로스를 뒤쫓던 중 프래터니티의 숨겨진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원티드]는 마크 밀러의 코믹스에서 원작을 빌려 온 영화로, 원작과 달리 프래터니티가 정의를 위해 암살을 행하는 조직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마크 밀러의 원작에서 웨슬리는 슈퍼-빌런(Super-Villains)의 일원이며, 이들은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의 조직으로 프래터니티를 구성한다. 만화에서 웨슬리는 신경발작 상태에 이를 때 찾아오는 예민한 감각을 폭력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훈련을 거침으로써 ‘암살자’로 거듭나고 무작위적인 살인을 반복하는 포악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브는 [원티드]에 비밀결사조직의 중세적 신비주의를 덧씌움으로써 종교적 질문을 내포한 영화로 포장하고자 노력한다. 

영화 [원티드]에서 프래터니티는 자신의 살인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더 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로 받아들인다.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이들의 논리는 암살 대상자가 죽지 않고 살았을 때 발생할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약한 설득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살인이 실패하였을 때 뒤따른 피해의 사례를 들어 다른 대상자 전체를 ‘인류에게 위해가 될 존재’로 치부하는 것은, 운명은 예정되어 있으며 거기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는 결정론자 특유의 냉혹함을 전제로 한다. 신탁을 받아 사형을 집행하는 프래터니티는 신의 대리인이라는 신성함을 스스로에게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고자 노력한다. 그들의 신은 잔혹하다. 이름을 새겨 넣는 직조기는 자신이 부여한 살인 명령을 거두어들이는 법이 없으며, 살인명령을 수행하는 프래터니티와 소통하는 법 역시 마련해놓지 않는다. 영화는 결국 프래터니티의 구성원 모두가 죽어야 할 존재로 지목되었음을 보여주며 살인도구로 이용된 프래터니티가 더 이상 필요 없어졌음을 확인시킨다. 그러나 만약 형제회의 수장인 슬론이 자신의 이름을 직조기에서 확인한 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프래터니티 조직원들은 죽음의 명단에 오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원티드]의 논리적 허술함은 주인공인 웨슬리와 프래터니티 모두가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는데 비롯된다. 그들은 운명의 직조기가 선택한 잔혹한 명령에 무비판적으로 순응함으로써 내부의 폭력성과 타협한다. 웨슬리가 프래터니티에 가입하게 되는 동기 역시 (아버지에 대한 복수나 정의가 아니라) 강한 힘을 행사하게 될 때 찾아오는 쾌감과 거대한 부가 중요하게 작용했음은 주지할 만한 사실이다. 영화는 정의로운 척 포장된 내부에, 적당한 구실을 들어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악당의 얼굴을 담고 있다. 애완동물로 쥐를 키우는 폭탄 전문가는 아끼는 쥐의 몸에 폭탄을 감아 실험하며 낄낄대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다. 보호해야 할 대상이 파괴할 대상과 혼재되어 있는 곳. [원티드]의 세상은 수호자와 파괴자가 일치할 때 찾아오는 혼란으로 소란스럽다.

프래터니티의 일원들은 운명의 기계가 악당이 아닌 자신들을 제거대상으로 지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정의’에 대한 신념보다 ‘신성을 부여 받은 자들의 특권’이 우선시되었음을 시인한다. 선택 받은 존재. DNA에 새겨진 우월한 능력. 그리고 신으로부터 게시를 받아 이를 수행하는 자들만의 권리가 이들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그 때문에 프래터니티는 자신들이 신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붕괴될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타락하게 된다.



맥락이 사라진 영화에 남는 것은 결국 시각효과뿐이다. 휘어져 날아가는 총알이 서로 부딪치며 파괴될 때, 도전할 수 없는 액션의 장관만이 잔상으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