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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그들 각자의 영화관 : 영화관에 대한 33가지 기억

by 늙은소 2009. 1. 2.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는 가끔 이런 코너가 등장한다. 20여가지 음식물을 각기 다른 그릇에 담은 후 번호를 붙이고, 어떤 음식이 들어있는 지 모르는 상태에서 5개의 숫자를 고르게 해 그 재료를 섞어 마시는 것. 딸기와 사이다에 간장, 마늘, 식초가 섞이기도 하는 이 장난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맛 없는 음식을 강제로 마시는 사람을 바라보며 재미를 느끼도록 기획되었다. 그러나 TV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유익한 것들이 낯선 조합으로 만났을 때 어떤 만남은 해로운 결과를 맺을 수도 있다는. 



칸영화제가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한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35명의 감독이 3분 내외로 제작한 단편 33개(코엔 형제와 다르덴 형제 포함)가 하나로 묶인 옴니버스 영화이다. 북유럽을 거쳐 중동, 아시아, 중남미를 아우르는 33개의 시선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영화인들의 서로 다른 기억을 한 자리에 모음으로써 ‘영화관’에 대한 각자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한데 섞는 것이 때로 곤혹스러운 맛을 유발할 수 있는 것처럼, 세계적인 감독들이 1/33을 책임진다 해서 그것이 바로 ‘명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이름있는 감독들의 작품을 모아 명작을 만들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칸 영화제와 함께 해온 감독들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기 위한 자리로의 기능이 우선하는 영화이다. 

35명의 감독들은 3분여의 시간 동안 ‘극장’에 대하여 이야기해달라는 제약을 지키며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노력한다. 치기 어린 장난 같은 영화에서 때로는 성의 없는 얄팍한 3분이 실망스럽게도 하지만, 결국 이것은 3분으로 구성된 영화 33개를 옴니버스로 구성하는데 따른 필연적 단점일 것이다. 영화는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성을 지니기보다는 ‘칸’이라는 영향권 안에서 조명되고 평가됨으로써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었던 35명의 감독과 인사를 나누는 파티 같은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미쳐 알지 못하였던 감독을 만나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고, 이를 통해 영화의 지평을 확장하는 계기를 삼는 것이 가능하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3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확인하기에 충분할 만큼 개성이 강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장이모우는 감상적인 장면연출을 지나치게 고집하는 단점이 있음을, 왕가위는 색채와 화면구도의 긴장성이 그를 대변함을, 라스 폰 트리에는 잔혹한 웃음을 여전히 잃지 않았음을, 허우 샤오시엔은 3분이 결코 짧지 않게 느껴지는 작가 정신을, 차이밍량에게는 3분이 아닌 1시간이 주어졌더라도 좋았으리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 어떤 이는 상투적으로 현실을 비판하기도 하고, 자기복제를 반복하기도 한다. 지나친 무거움과 지나친 가벼움이 공존하는 시간.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영화를 ‘한편의 완전한 작품’으로 대하지 않고, 33가지의 서로 다른 맛으로 대함으로써 다양한 시선이 존재함을 확인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길을 탐험하도록 자극 받는 데 있다. 제법 웃긴 유머를 구사하는 ‘월터 살레스’가 ‘중앙역’의 감독이라는 점에 무릎을 치기도 하고, 본인이 직접 출연하여 한편의 코미디를 선보인 ‘엘리아 슐레이만’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만드는 역할.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 할 일을 다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3가지 맛을 섞어 하나의 맛을 만들지 않고, 33가지를 따로 음미할 것. 한 번에 들이키기보다 33번으로 나누어 마실 것. [그들 각자의 영화관]의 식사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