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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화씨 9/11을 보다

by 늙은소 2004. 7. 15.

화씨 9/11

감독 마이클 무어

출연 마이클 무어

개봉 2004.07.22 미국, 1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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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뉴스를 들으니 확실한 정보도 없이 이라크를 침략한 부시를 미국내 언론들이 비판함은 물론이며, 부시의 측근이 전쟁복구 명목으로 거액을 챙긴 사실이 폭로되고 있다고 한다.

어제 '화씨 9/11'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가 끝나고 자발적으로 박수가 나오기는 태어나 처음이 아닌가 싶다. 영화가 폭로하는 진실에 감동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이 흘린 눈물과 피, 절규에 감응해서만도 아니다.

세상을 좀 더 치밀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이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기 바란다. 자신이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회와 제도에 대하여 대충 알고 있으니 더 떠들지 말라며 귀를 닫아버린 사람들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연봉 30만 달러를 지급받는 부시는 자신을 뽑아준 미국인들보다 30년간 자신의 가족과 측근에게 15억불을 벌게 해준 사우디왕가를 더 가깝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라고

재벌이나 정치인들.. 특히 세습된 그들의 권력과 부는..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소속감보다 더 우위의 소속감을 제공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와인맛을 구분한다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는 평민들보다는 종교와 언어가 다르더라도 고급 프랑스 요리를 어려서부터 먹고 자라났으며, 스키는 스위스에서 타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나라 부유층들에게서 더 친밀함과 동질성을 확인하지 않을까?

부시가 어느 자리에서 한 연설 중 일부가 영화에 소개된다.
'부자 여러분, 그리고 더~ 많이 가지신 부자 여러분.. 당신들이 제 기반입니다.'

...

이 영화는 선동적이다.
거기엔 분명 빈틈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선동적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편의 극히 일부일지라도 인정해줘야만 하는 부분까지 모두 묵살해야하기 때문이다. 일정한 편집의 기술, 과장의 능력이 요구된다.

우리는 모두 다큐멘터리 영화가 진실을 소재로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을 수 있다.

...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을 재단하여 필요로 하는 것을 추려냄으로써 영화가 만들어진다. 사진 또한 그렇다. 가시계의 공간을 사각의 프레임으로 잘라내는 것만으로 사진은 이미 세상을 편집해버린다. 의도나 목적을 철저하게 배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화씨 9/11을 보고 있자면.. 반대의 입장에서 반대의 목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전시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생각해보라. 국가관, 애국심의 고취로 충만하지 않은가. 폐허가 된 도시와 버려진 아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미군을 영상으로 잡고, 죽은 아들의 사진을 들고서도 미군이었던, 전쟁처에서 거룩하게 사망한 아들과 미국이 자랑스럽다는 어머니의 모습을 비춰주면 이 모든 목적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집요해져야한다. 진실을 끝끝내 판단할 수 없게 되리라는 허무주의적 결론이 예견됨에도 생각할 것을 멈추어선 안된다.

...

영화를 두고, 진지하지 못한 태도에 대하여 비판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신기하게도 그들 모두는 미국에 있거나, 현지인들을 잘 아는 경우였다) 그것을 제외시켰더라도 충분히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혹은 정당성과 윤리성에 오점이남을 수있다는 지적을 그들에게서 들었다.

미국에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다큐뿐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미국은 유머를 지극히 숭상하는 문화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대통령의 케릭터 전략은 대부분 유머와 휴머니즘 과다로 뒤범벅된다. 저렇게 기자들 앞에서 헛소리 하다가 그거 나중에 상대편에게 공격당하지 않나.. 걱정스러울 정도로 그들은 유머를 과다하게 사용한다.

우리 나라처럼 앞 뒤 전후 맥락 다 잘라내서 한 사람 빨갱이 만드는 나라도 없다 생각했는데.. 만약 여기에서 그렇게 유머까지 남발했다가는.. 정치생명은 시작도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외국 대통령은 유머도 잘 구사하고 '쿨~'해 보이던데..라며 부러워했더랬는데.. 우리 나라에서 그리 했다가는 일 날 것이고, 미국에서도 그리 했다가.. 일 낸 꼴이다.

어쩌면 그런 유머는 의도적으로 편집해서 공격용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협약이 미국 내에선 마련되어 있었던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마이클 무어는 협약을 위반한 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자극을 주기 위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