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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I love you, I love you Not

by 늙은소 2004. 8. 9.

미스 플라워

감독 빌리 홉킨스

출연 잔느 모로,클레어 데인즈

개봉 프랑스,독일,영국,미국, 9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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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드 로'와 '클레어 데인즈'가 청소년기를 막 벗어났을 무렵 출연한 영화가 있다. 어느 케이블 방송에서 오전 7시에 보게 된 이 영화는 [I Love You, I Love You Not]으로, 하이틴물로 오해되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조용히 뭍혀버린 영화들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데이지'라는 이름의 여주인공은 유태인으로, 아직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여학생이다. 데이지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잔느 모로)와 가깝게 지내왔는데, 그녀는 유태인 포로수용소에서의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할머니로부터 수용소에서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데이지는 태생적인 우울함이 깃든채 성장했고,이 모든 것이 또래 아이들과구별되는 그늘을 그녀에게 부여한다.

데이지가 짝사랑하는 남학생(주드 로)은 영특하며 재치가 있어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다. 그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뛰어난 영감을 지니고 있어 상대를 쉽게 파악하는 재능이 있으며, 직감적으로 데이지가 지닌 독특함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윽고 두 사람 사이에 교감이 형성되고, 데이지는 자신의 장점을 이해해주는 그에게 빠져들고 만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데이지가 다른 아이들과 같지않다는 것..그 때문에 주드 로는 자신의 세계에 그녀를 참여시킬 수 없고, 친구들 속에서의 자신과 그녀와 함께 할 때의 자신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활동적인 그는 친구를 택한다. 데이지에게 있어 그녀의 고유성을 알아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는 많지 않으나, 그는 그렇지 않다. 그는 상대의 특성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으며, 그 때문에 자신의 취향에 맞게 상대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

주드 로가 시시껄렁하고 평범한 친구 집단으로 돌아간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데이지 못지 않게 그에게도 그녀의 존재는 귀하고 드문 만남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그녀가 남과 어떻게 다르고, 왜 다른지 그는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직 어렸고, 그는 그녀의 어둠 속에 파뭍힐까 두려워한다.

이러한 만남에 대하여..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에는.. 바보같은 선택을 한 주드 로를 한심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들어 그의 입장이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
나는데이지와 같은 어두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주드 로의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었다. 나를 이해시키기보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더 발달한 탓이다. 그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고, 내부의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본인에게 그것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고독 속에서 방황을 거듭해온 이들의 반응은 고마움이나 반가움을 넘어선 집착이 되는 경우가 잦았다. 결국 급작스러운 태도에 놀라 뒷걸음질 치거나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치곤 하였다. 이런 만남이 중첩되는 과정에서 나는 그들의 고유함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게끔 되었다. 내 손을 쥔 그의 떨림을 느끼기에는.. 내 안의 굳은살이 너무 많지 않은가.

며칠 전 겪은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이러한 만남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그리한 것이고, 나는 그의 고유함을 알면서도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은 것이다. '여유로울 때라면 모르겠으나 지금은 바쁘니.. 당신의 가치를 묵살할 수밖에 없군요..' 결국 내가 그에게 보인 행동은 이렇게 해석되었을 것이다.

차이를 인식하는 시선이 그 모든 차이에 오히려 둔해질 것을 명령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 내가 그렇고, 그는 분노했다.

3.
마찬가지로 케이블에서 방영하는 시리즈 중 하나에 관한 이야기. 'queer as folk'
이 시리즈는 동성애자가 주인공이며, 동성애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드라마이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마이클'은 HIV 양성 환자인 '벤'을 만나 사귀기 시작한다. 그 사실을 안 친구들이 모두 그에게 헤어질 것을 권하고, 마이클은 양성환자와도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결국 마이클는 벤과 sex를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고 말하는마이클에게, 벤은 실망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괜찮다 말한다. (벤은 진정 '쿨-게이'였다 - -;)

양성환자들 끼리만 사귀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지 않은 것을 생각한다면 이런식의 헤어짐은 그에게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감당도 못할 거면서 왜 사귀기 시작했냐고 따져물을 법도 한데 오히려 더 깊어진 다음이 아니라 다행이라며마이클의 부담을 덜어주는 그의 태도는 대단히 훌륭하지만 비현실적이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못하겠다는 번복에 뒤따르는 욕설과 분노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모습이다. 처음부터 거절하거나 의사를 분명히 한다면 모르겠으나, 할 것처럼 하다가 안한다거나 분명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다가 슬쩍 빠지는 태도는 상대를 오히려 더 분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4.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상대를 이해하고 그의 고유함을 알아보는 시선은 이와 비슷한 '뒤로빼기'처럼 보이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친구든 애인이든..혹은 그 무엇이든..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될각오가 없다면 처음부터 그의 차이를 알아보거나, 알아봤음을 눈치채게 해서는 안된다. 그가 아직 모르고 있는 자신의 장점. 아직 부족한.. 그러나 고칠 수 있는 단점이 눈에 보여도 그것을 쉽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친구가 될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