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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시대극과 결합한 에로티시즘

by 늙은소 2017. 4. 23.

01. 벗는 것은 누구인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종영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작가:김은숙)’에서 남자 주인공인 송중기가 상의를 벗고 나온 것은 1회였다. 마찬가지로 김수현을 톱스타로 자리잡게 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작가:박지은)’에서도 김수현의 샤워 장면은 1회에 등장했다. 이것은 드라마 시작 첫 회에 여성 시청자를 사로 잡고야 말겠다는 제작사의 전략이다. (그것이 효과적인 전략인가에는 의문이 있지만 말이다)

남자 배우의 벗은 모습이 남성 시청자에게 어필할 것 같지는 않으니, 이 드라마의 공략 대상이 여성인 것은 분명하다. (남자 배우의 상의 탈의를 여성 시청자들이 정말로 보고 싶어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로 하자) 이 역사는 결코  짧지 않아 거슬러 올라가면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가 그랬으며, ‘별은 내 가슴에’의 차인표 역시 카메라 앞에서 샤워씬을 선보여야 했다.

여성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드라마에서 남자 배우들은 이야기의 흐름과 무관하게 샤워를 하였고, 이 날을 위해 닭 가슴살만 먹었음을 고백이라도 하려는 듯 수영복을 입고 모델 워킹을 선보였다. (그들은 샤워 도중 결코 비누칠을 하지 않으며 물론 때도 밀지 않는다. 참으로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샤워가 아닐 수 없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

이런 드라마에서 여성은 벗지 않는다. ‘태양의 후예’의 송혜교는 꿋꿋하게 하이힐을 신고 병원을 돌아다녔고,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 역시 명품으로 휘감을지언정 수영복 차림을 하고 등장하지 않았다. ‘상속자들(작가:김은숙)’의 박신혜나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구혜선)가 비키니를 입고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자랑했다면 상당수의 여성시청자들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그걸 기피하거나 싫어해서가 아니다. TV가 여성의 몸을 전시하는 순간 몰입은 깨지고, 여성 시청자들은 타자가 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드라마로부터 소외되는 것) 여성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벗고 나오는 순간, 감정 이입할 대상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남성 시청자를 위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벗는 것은 언제나 여성이다.
과감한 수영복 차림으로 물 속에서 걸어 나오는 여성의 모습은, 남성 관객을 공략하는 전형적인 연출이다.

이 주제에 있어서 흥미로운 것은 '시대극'이다.

시대극(역사극)의 경우, 타깃 시청자의 성별에 따라 남성형 사극과 여성형 사극으로 구분할 수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정통 사극이 남성형 사극이라면 궁중 암투를 다룬 ‘장희빈’이나 ‘여인천하’ 같은 드라마는 여성형 사극이라고 볼 수 있다.

남성형 사극에서 누군가 노출을 한다면, 그건 당연히 여성이다.
그런데 여성형 사극에서 노출을 담당하는 것 또한 여성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사극에서 목욕하는 건 언제나 여주인공이지 남자주인공이 아니다. 여러 차례 드라마로 제작된 ‘장희빈’에서 언제 숙종이 노출을 한 적이 있단 말인가. 여성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시대극에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현대극에서는 여성의 노출장면이 여성 관객을 소외시키고, 몰입에 방해되는 요소였다면. 왜 시대극에서는 여성의 노출이 여성 시청자에게 에로티시즘으로 수용되는 것일까?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남장을 한 여자가 숨어서 목욕을 하는 장면이라든가, 물에 빠지며 여성의 신체를 드러내는 것은 이러한 장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02. 검열의 시대

예술이 검열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성적인가? 폭력적인가? 그리고 정치적인가.

검열은 그 사회의 가치관을 가늠하게 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단순히 보수적이기만 한 사회에서는 성과 폭력의 문제가 검열의 대상으로 대두되지만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권력은 정치적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가위를 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90년대 이전까지 영화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가 검열의 대상이었고, 검열의 주된 기준은 정치였다.

버스안내양의 노동을 다룬 영화 ‘도시로 간 처녀(1981)’가 상영불가 판단을 받은 이유는 사회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게 이유였다. 장발을 한 젊은이들이 방황하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은 그들이 사회에 제대로(건전하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난도질되었으며, 하이틴 로맨스물인 ‘진짜 진짜 미안해(1976)’는 면학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가자, 가자’ 라는 대사가 월북을 의미한다고 해석되던 70년대 검열문화 속에서 한국영화계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살아남은 영화는 ‘미워도 다시 한 번’ 같은 신파극과, 계몽 반공영화였다.

80년대가 되자 5공화국이 들어서며 정치성 여부는 검열하되, 성애의 표현은 완화되었다. (3S정책의 시작) 그에 따라 ‘애마부인(1982)’, ‘산딸기(1982)’,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무릎과 무릎 사이(1984)’ 같은 영화들이 속속 제작, 상영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조성된 것은 단순히 국내 검열 정책의 변화에만 원인이 있지 않았다. 당시 미국 영화계에서도 ‘블루 라군(1980)’, ‘파라다이스(1982)’ 같은 영화들이 인기를 얻으며 아류작이 양산되고 있었다.

영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이 시기에 활발하게 제작되었던 국내외 에로티시즘 영화들을 비교해보면 어떠한 유사성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현실도피적인 에로티시즘’이라는 것이다.

현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들은 ‘과거’로 돌아가거나(시간의 탈주). 이 땅의 제약(법적, 윤리적 금기사항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남태평양의 무인도를 선택한다(공간의 탈주). 이들의 목적지는 때에 따라 사하라 사막이 되기도 하고, 강원도 산골 깊숙한 곳에 자리한 폭포수 아래가 되기도 했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들이 추구한 욕망은, 사랑의 완성이나 성적 욕구의 해결로 해석되기 쉽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욕망은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현재의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에 있었다.

이 시기의 에로티시즘 영화에는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으니, 그것은 성은 있으나 권력은 없다는 것이다. 대체로 성에 있어 소극적인 남성과 적극적인 여성의 구도가 많으며, 남성 캐릭터의 권력과 재력이 두드러지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남성 관객이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도 있으며, 군부 정권 하에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남성의 무의식이 반영되었다는 해석 역시 가능하다. 또 하나,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 민감할 수밖에 없던 80년대 영화 검열 기준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권력을 지닌 남성 캐릭터가 특정인(?)을 상징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검열의 대상이 되었던 시대였다. 탈모가 있는 남자 배우가 방송활동을 하지 못하던 시기였는데 말해 무엇하랴) 이런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남자 주인공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인물로 수동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변강쇠(1986)'

80년대 중반 이후가 되자 한국의 에로티시즘 영화는 공간 보다는 시간의 탈주를 선호하게 된다. ‘변강쇠(1986)’나 ‘어우동(1985)’을 비롯해 ‘씨받이(1987)’와 같은 영화가 쉼 없이 제작, 상영되었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함에 따라 시대극의 얼굴을 빌린 에로영화들까지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고, 이 시기에 붐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이 여성관객에게 소구되었던 것은 아니다. (80년대 에로티시즘 시대극은 철저하게 남성 중심적인 영화였다)

여성 관객이 극장에서 여성의 노출을 소비하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로, 에로티시즘과 결합한 코스튬 드라마(costume drama)가 한국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와 겹쳐진다.

 

03. 한국형 코스튬 드라마의 시작

시대극의 하위 장르로 분류되는 코스튬 드라마(costume drama)는 화려한 의상과 소품을 보여주기 위해 시대를 차용하는 영화다. (그로 인해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고증이나 역사적 사실 따위는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SF 장르에서 특수효과와 CG가 중요하고, 액션 영화에서 격투장면과 추격씬이 중요하듯. 코스튬 드라마는 의상과 미술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다.

패션지를 정기 구독하고, 인테리어 잡지를 챙겨보는 여성 관객에게 코스튬 드라마는 좋은 볼거리다. 그들에게 이 장르의 영화는 고급스러운 제품을 선보이는 쇼룸이나 백화점에서의 아이쇼핑, 혹은 잘 꾸며진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는 것과 유사한 만족감을 제공한다. (내 경우도 영화 미술이나 의상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아카데미 의상상이나 미술상 수상작품만 따로 모아서 볼 때가 있다)

한국 영화에서 이 장르의 영화가 본격적으로 제작된 것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부터였다. 시대극은 아니지만 영화미술이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영화 ‘장화, 홍련’과 ‘올드보이’ 역시 2003년작으로, 한국 영화 시장에서 미장센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며 미술과 의상을 통해 시각적인 만족도를 제공하는 영화가 2000년대 초 서서히 등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영화로 그치지 않아 2002년에 순정만화 ‘궁’이 연재를 시작하여 인기를 끌었고 2006년 드라마화 되며, 한복을 변형한 의상과 각종 인테리어 소품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코스튬 드라마가 스크린을 넘어 TV 드라마로 확장된 계기에는 HD 방송의 시작이 있다. 해상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이며 화면 비례가 가로로 넓어져, 그 빈 공간을 채울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

과거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소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 역시 2000년대 초중반의 일로, 이선미의 ‘경성애사(2001)’, 정은궐의 ‘해를 품은 달(2005)’과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2007)’과 같은 소설들이 2000년대 초중반에 큰 인기를 얻으며 차례로 드라마화되었다.

이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코스튬 드라마는 로맨스 장르에 가까웠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이 되자 코스튬 드라마는 에로티시즘과 결합하였고, 하나의 독립된 계보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예견된 흐름이다. 과도한 치장은 소비 욕구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것은 향락적인 생활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장치이기도 하다. 더구나 한국 영화가 시대극에서 화려한 의상과 무대를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어, 궁중이나 상류층을 중심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특히 고급스럽게 세공된 가구와 장신구로 치장하기 좋은 장소는 양반가의 규방보다는 기녀의 방이며, 이야기는 점차 치정극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김대우 감독의 ‘음란서생(2007)’을 시작으로, ‘미인도(2008)’, ‘쌍화점(2008), ‘방자전(2010)’, ‘후궁:제왕의 첩(2012)’, ‘간신(2015)’, ‘순수의 시대(2015)’ 등이 이 계보를 이어갔다.

영화 '미인도(2008)'

이 새로운 장르(코스튬 드라마와 에로영화가 결합한)는 개연성의 부족과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제법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는 경우가 많았고, 바로 이 점 때문에 낮은 완성도의 작품이 계속 제작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에로티시즘 사극이라는 장르가 존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영화를 소비하고자 하는 관객이 남성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일부 여성 관객에게도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영화를 찾는 중장년층 남녀 커플의 관객이 많은 편이다)

남성 관객이 이 장르에서 에로티시즘에 주목한다면, 여성 관객은 의상과 미술을 탐닉하였다. 또한 현대극에서라면 여성 관객이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을 만한 강압적인 성행위 장면도 관람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는 그 시대가 그런 시대임을(여성은 억압되었으며, 성에 있어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없던 시대였음을) 우리가 알고 있으며, 이것을 비판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지점이 심리적 보호막이 되어 여성 관객이 여성의 노출과 성적 대상화에 큰 거부감을 갖지 않게 만들었으며, 여성 캐릭터와 동일시하거나 혹은 남성 캐릭터에 이입하는 양자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분명 넘지 말아야 할 경계가 존재한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여성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는 분명 존재하며, 이것을 넘어설 경우 여성 관객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영화 제작 현장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남성이며, 영화를 제작함에 있어 여성의 시선이나 의견이 반영되는 일은 극히 드문 편이다. 그에 따라 최근 제작된 해당 장르 영화 상당수가 여성 입장에서 보았을 때 어울리지 않는 캐스팅과 연출을 선보였으며, 소위 말해 깨는 장면을 구성하는 등 여성관객을 만족시키는데 거듭 실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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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후반 한국 영화계의 에로티시즘 사극이 남녀간의 권력관계는 생략한 채, 성에 있어 여성이 보다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에로티시즘 사극은 강한 권력을 지닌 지배자형 남성 캐릭터와 수동적이며 성적으로 착취당하는(혹은 유린당하는) 여성 캐릭터를 대비시키는 구조가 많은 편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지 않을까? 특히 이를 수용하고 소비하는 여성 관객층이 존재한다는 것. 그들의 욕망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