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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외계인의 신화 1

by 늙은소 2005. 1. 23.

(대학 3학년, 여름학기 수업에 들은 자연과학개론 시간에 제출한 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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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계인의등장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인류가 외계인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천체물리학의 발달과 함께였다.

근대적 우주관의 기초 위에 정의된 외계생명체의 범위는 매우 협소했으며,그 결과 가능성은 희박해질 수밖에 없었다.이것은 지구와유사한 환경에서만 생명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생명 탄생의 근원인 물이 있어야만 한다는 믿음은 외계생명체의 가능성을 일순간에 축소시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드레이크 방정식을 따르면 환경조성의 가능성에 다시 생명발생 가능성, 진화 가능성, 발전 지속의 가능성, 지느발달의 가능성.. 등등 점차 인류와 유사한 형태와 능력을 지닌 외계인이 되도록 구체화시키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찾으려는 외계인은 잃어버린 쌍둥이 형제라도 되는 것일까?

만약우리가 외계인의 정의를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 양식을 지닌 생명체로 그 영역을 확대한다면, 그 가능성은 좀 더 높아질 것이다. 또한 외계인에 대한 관념을신화시대의 그것과 일부 공유해야할 지 모른다.

외계인이나 신들의 이야기 모두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영역 외의 것에 대한 호기심이며, 인간이 아닌 다른 지적 존재에 대한 추상이라는 의미에서 공통점을 지닌다.바로 이런 요소들이 외계인과 신화를 마주보게 하는 이유가 된다.

신화시대를 살았던 신들과 괴물은, 인류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예를 들면 하늘이나 깊은 바다, 용암이 끓는 화산의 분화구 속과 같은 곳)에서 살아간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자 하늘과 심해深海, 심지어 화산 분화구 속까지 탐사할 수 있게 되었고, 장소는 신비함을 잃었으며 우리는 상상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제신들과 괴물들은 삶의 터전인 지구에서 벗어나,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길을 떠난다.
과학의 발달로 설 곳을 잃은 신들이 우주로 떠나는 긴 여정을..

흥미로운 사실은 인류가 달을 탐사하고, 화성을 비롯한 태양계 내의 행성들에 대하여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됨에 따라, 외계인들은 점점 더 멀리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달에 살고 있는 거대한 파리 형태의 외계인이나, 화성에 살고 있는 문어 모양의 외계인에 자극되지 않는다. 현대의 외계인은 전혀 다른 은하계, 혹은 다른 차원 속에서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외계인은 과학과 이성에 의해 내몰린 신화가 만들어낸 또 다른 현대의 신화이다.


2. 스크린에서 만난 외계인

우리가 다양한 종류의 외계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바로 극장이다.
상상력과 자본, 이를 시각화할 수 있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헐리우드의 SF영화가 해마다 전 세계의 극장가에 쏟아들어져 오고 있다. 막대한 자금과 최고의 기술이 접목된 영화들은 상상력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다 공언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멸종된 공룡을 재현하고, 폭발이나 재난과 같은 거대한 충격적 장면을 구성해내는 데는 매우 탁월한 이 능력도 외계인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키는 데에는 부족해 보인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시리즈에 등장하는 외계인이나, 유명한 tv 시리즈였던 '스타트랙' 등, 인류가 아닌 새로운 존재들의 모습은 상상력의 한계가 지극히 협소함을 증명해줄 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의 모습은 구조적으로 인간과 거의 유사하거나, 파리나 사마귀 등의 곤충, 지렁이와 같은 형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발전시킨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스스로 이러한 영화와 만화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를 좁히고 있는 것이다. 악어의 이빨과 곤충의 몸, 박쥐의 날개 따위를 적당히 뒤섞은 괴물을보면서, 상상력의 승리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

태초에 우주를 창조한 신이 존재하여, 자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만들었다는 종교적 테마가 전 우주에 적용된 것이 아닌 다음에야, 지구와 같은 조건의 행성이있다한들 지구인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가 이루어졌으리라고는 보기 어렵다.

몇년 전 사망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A Space Odyssey'가 위대한 SF영화로 손꼽히는 이유 중에는 그가 사람처럼 두발로 걷는 외계인이나 근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신의 형상을 만들어내지 않고,빛을 반사하지 않는 검은 직육면체만을 내보임으로써 인간 스스로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한 시각효과도 한 축을 이룬다.

기술이 재현과 실제에의 표현에 집착할 때, 상상력은 증발한다.



3. 과거를 지배하던 것

우리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괴물의 그림이나, 성스러운 동물의 조각상을 접할 때, 과거인들의 상상력에 존경을 표하곤 한다. 그러나상상 속의 동물들은 말 그대로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뱀의 몸에 날개를 달든,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에 사자의 몸을 붙이건 간에, 이 모두는 보다 강한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한 하나의 "조합체"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동물들의특징적인 부분들만을 떼어내어 이것을 적당히 조합시킨 생명체는 결국 토템이나, 에니멀리즘의 단계가 변화된 것을 의미할 뿐이다.

하얀 말에 뿔 하나를 붙인다고 해서 갑자기 신성을 지닌 유니콘이 되고, 말의 하체와 사람의 상체 따위를 붙인다고 해서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켄타우루스가 된다는 것은,동물이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오지 않는 현대에는 큰 의미가 되지 못한다. 우리 머리 속의 야생동물은 늘 철창 안이나, TV 상자 속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외계인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은 이러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상상 속의 동물은당시인들의 인식 영역의 테두리 안에서 생성된다. 지구의 하늘과 바다에서 살아가던 신들이 우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목숨을 걸고 긴 여행을 하거나, 탐험을 하는 과정에서야 볼 수 있던 야생 동물들, 특히 맹수가동물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존재로 추락하자, 신성한 동물과 괴물의 소재도 변화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야생동물의 뒤를 이어, 뇌염과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의 원인으로 밝혀진 곤충이 새로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현미경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보다 작은 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전염병을 옮기는 각종 미생물과 박테리아, 대장균과 같은 생명체들이 새로운 괴물의 형태로 등장했다.

이것은 상상력이 확대된 것이 아니라, 그저 기술이 발전한 것 뿐이며, 기술의 한계 속에서 인간의 상상력은 늘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말일뿐이다.


4. 외계인의 등장

외계인이 문학과 예술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후반, 과학이 발달하면서 부터이다. 지구의 생물과는 완전히 다른 생태적 특징과 사고 방식을 지닌 외계인이 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라마르크와 다윈의 영향이 컸다.
지구의 동, 식물이 일정한 진화 단계를 거쳐 발달해 왔다면, 외계 생물도 그러할 것이며 여기에서 인류와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닌 외계 생명체에 대한 상상의 자유가 주어졌다.

특히 영국에서는 '적자생존설'에 관심을 가져, 외계인을 인류의 적으로 파악 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지구에서 강한 종만이 살아남듯이 우주에서도 강한 외계 종족이 약한 외계 종족을 제압하려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으로, 덕분에 초기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대부분 우호적이기보다는 지구 정복에 나서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1,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국제 정세가 냉전 구도로 고착되면서공산권의 위협을 외계 괴물로 상징화 하는 영화들이 제작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존 캠벨의 단편을 영화화한 '괴물'과, 잭 피니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Invision of the Body Snatchers'가 있다. 이 영화는 외계에서 온 정체 불명의 생명체가 인간의 몸 속에 잠입해, 겉모습은 인간 그대로지만 정신은 이미 외계인의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이는 겉모습으로는 판단할 수 없지만 속으로는 어떤 생각이나 의도를 숨기고 있는 지 모르는, 타인에 대한 공포를 sf 장르에 융합한 경우라 하겠다. ('우리 중에 공산주의자가 있다!' 는 매카시 시대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외에 특이한 예로 1956년 MGM에서 제작한 'Forbidden Planet'은 세익스피어의 '폭풍우'라는 작품을 소재로 삼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는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무의식이 에너지로 전환된 모습이었다. (이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 얼마나 우리의 삶 속에 침투해 들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되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외계인의 모습은 외형적인 상상력의 발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를 은유하고 풍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외계인의 외형보다는 이들의 사고나 사회체제 등이 부각되었다. 1968년 작인 '2001:A Space Odyssey'는 초월적인 외계인에 의해 인류가 창조, 발전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종교와 sf의 결함으로 외계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등장을 예고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후 1980년대 들어 국제 정세가 해빙무드를 맞고 서서히 화해의 시대가 열리면서, 공포스러운 괴물 대신 우호적이며 친근한 외계인이 등장했다. 이러한 영화에는 '82년에 발표된 'E.T.'와 '85년 작인 'Cocoon'등이 있다. 그러나 1990년에 들어서는 세기말을 암시하듯 악마의 변형으로 외계인을 등장시키게 되었다.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점, 순수한 악을 상징하는 괴물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세계의 종말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렇듯 영화와 속에 등장하는 외계인의 모습은 실제의 진화적 추측이나 천문학적인 이론에 근거하기보다는 정치, 사회를 반영하는 쪽으로 표현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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