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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피에르 키리아 - 고독의 피에로

by 늙은소 2005. 1. 17.

이 짧은 소설은 취향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옛것에 심취하는 일의 고독함과, 젊기에 가져야 하는 정신의 분주함이. 섞이지 않는 액체들처럼 뒤엉킨 채 조용한 소도시 풍경에 파고든다. 거리 전체가 무언극을 상영하는 극장처럼 변화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도시에. 완료된 시간으로 구성된 공간에서 삶을 살아가는 젊은 골동품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는 바깥의 삶이 자신의 세계를 역으로 허구화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과거에 고착되고자 하는 자신의 취향을 버리지 못한다.

...

본래 고상하고 세련된 취향일수록 고립되게 마련이다.

좋은 것과 싫은 것의 경계가 분명하면 할수록, 유사한 취향의 사람들과도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자신의 취향을 업으로 삼아 대상을 평가하고 그것에 가치를 매기는 사람이라면 오죽하겠는가.
그들의 취향은 보다 엄밀해져야하며, 대상을 향한 시선은 더욱 냉정해질 것을 요구받는다.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취향의 영역 안에 들어옴으로써.. 소통의 가능성이 확장되기를 그들은 바라지만.
골동품 점을 들여다보는 입장일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취향에 '삶'이 배제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된다.

취향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때로 전복을 감행하기도 한다.
박제가 되어버려 더 이상 그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10년 전의 취향과 그 부산물들은 누구나 하나 이상 가지기 마련. 내가 이런 걸 좋아했었다니. 잊혀진 자신만의 취향이 반영된 골동품을 끌어안고 있음을 뒤늦게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은 음악이거나 가구일 수도 있으며. 혹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더 이상 듣지 않는 음반.
사용하지 않는 가구나 먼지를 닦아주지조차 않는 장식품들.
그리고 추억을 회상하지조차 못하는 지나간 관계들.
박제, 혹은 골동품이 되어버린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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