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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연예인 X파일 - 곁가지 생각

by 늙은소 2005. 1. 26.

연예인 X파일로 각 포털 뉴스섹션이 시끄럽다.
(Off라인 상의 뉴스는 오히려 조용한 편이다)

파란(KTH)의 스포츠지 (사실상의)독점계약에 대항하기 위해, 이미 각 포털업체들의 주도 하에 작년 여름부터 연예정보 생산업체가 증가된 상태에 있었다. 아울러 대형 스포츠지의 도산과 각 언론사들의 구조조정 등의 영향으로 많은 기자들이 연예정보 업체로 자리를 옮긴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네이버와 같은 주요 포털의 헤드라인기사는 온통 연예인 X파일 이야기로 도배 일색이다. 연예정보 업체수가 늘어난 탓에 비슷한 내용의 기사수가 더욱 증가하게 된 것이다. 실시간 속보에 가까운 기사들이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의 언론사(?)들로부터 쏟아져들어오고 있다. 소송 움직임을 보이는 연예인은 지금 누가 있으며, 누가 더 가담할 전망인지, 각 연예인들의 입장발표에 이르기까지.. 왜 이 사건이 수십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쓰나미에 비교되어야 하는가? 특종과 속보라는 기자컨셉에 빠져있는 이들이 만들어 낸, 한참 잘못된 비교가 아닌가?

기사를 훑어보면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 유출, 근거없는 소문을 사실처럼 유포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범위가 여기에 있으며, 연예인으로서의 이미지와 생명력이 이 부분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척이나 재미있게 X파일을 보았으면서도 불편함을 어쩌지 못한 부분은 사생활이나 그들이 감추고 싶어했을 가족사 등 개인적인 부분보다는.. 그들의 직업관이 공격받는 지점에 있었다.

앞서 '기자컨셉'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 말은 X파일의 패러디라고 할 수 있다. 실제 X파일에는 자기관리와 재능에 대한 평가에서 '배우 컨셉에 빠져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것은 배우로 거듭나려는 노력의 중간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겪는 과도기적 상태이거나, 혹은 노력의 부재과 부족한 결과에도 자신이 배우라고 생각한다는 두 가지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보면, 작품선택에 지나치게 까다로우며, 상업성이 떨어지는 작품을 고집함으로써 기획사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불만의 표출이 이 말에 녹아있는 경우가 발견되기도 한다. 연기변신과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봄으로써 경험을 쌓고 자기 자신을 시험해보겠다는 노력이 '배우 컨셉'과 '겉멋'이라는 말로 싸구려 취급을 받는 것이다. 시청률 낮은 드라마를 하는 것과 성공하지 못한 연기변신이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며 재능이 없는 것으로 연결되어야 옳은 일일까?

특종을 잡아야 한다는 기자컨셉이 있고, 다양한 배역을 모두 소화해내야만 한다는 배우컨셉이 있듯이 대부분의 직업과 계층에는 컨셉이 존재한다. 타워 팰리스에는 경비원과 청소하는 아줌마들에게도 미소 지으며 인사할 줄 아는 중산층의 컨셉이 필요하고, 명문대생들은 성적 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도 착실함을 보여야 한다는 컨셉에 구속되기 쉽다. (만화 '그 남자, 그 여자'를 보라) 모든 이들이 극찬해 마지않는 작품이라 할 지라도 결함을 찾아내야만 하는 평론가 컨셉이 어찌 없을 것이며,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를 어딘가 구겨 넣음으로써 아는 척 해야 한다는 필자 컨셉이 또 어찌 없을 것인가. (원고 청탁 받아보니.. 자연스럽게 컨셉을 어떻게 잡아야할지 고민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겉멋과 컨셉에의 치장을 비난하던 것이 내 입장이었는데도, 막상 그것이 전면적으로 공격받는 모습을 보자니 영 불편해진다.

이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마도 참혹한 비극적 현장을 재현한 회화작품을 충격 속에 바라볼 수는 있어도, 실제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다큐멘터리 앞에서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심리적 상태와도 유사하다 할 것이다. 'A양이 그랬다더라'는 식의 기사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수치심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된다던 X파일에 담겨 있었다. 그것은 비일상적으로 다가오는 스캔들이나 성적 취향과 같은 부분에서보다는 직업정신과 좀더 나아지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공격당할 때 더욱 강화되었다. (연예인인)그들과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고통과 수치심의 교집함은 바로 여기가 아니었을까?

좋은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마련되지 못하였더라도, 그것을 경험으로 체득하여 배우로 거듭나겠다는 생각과 노력을 비난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나 가족사의 공개보다 더 큰 잘못이 아닐까? 눈물을 글썽이며 가족들이 더 큰 충격을 받았다는 감정적 호소보다는, 배우와 연예인으로서 갖춰야 할 직업관은 무엇이며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잘못된 기준으로 평가한 문서의 가치 없음을 논하는 것이, 개별적으로 '제 얘기는 정말 사실이 아니거든요'라 말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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