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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고향, 서울.

by 늙은소 2005. 2. 9.

1.
70년대 서울은 변화의 중심에 있었으나, 그 변화의 결과가 무엇이 될 지 알지 못하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그곳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쯤 우리의 집을 가지게 될지 예감할 수 없었다. 시골에서 배운 부지런한 삶의 가치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도시만의 경쟁의 룰이 이곳에 있었다.
서울의 외곽을 돌며, 집을 소유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부모는 일을 하러 나갔고, 아이들은 가방을 짊어진 채학교로 향했다. 그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것은 일요일 아침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도시의 삶이 부과한 각자의 무거운 짐은, 곧잘 이 대화마저도 침묵으로 대체하게 만들곤 하였다.

급격한 변화를 겪어낸 나의 고향 서울은 사실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내가 거쳐 온 동네들의 대부분은 허물어졌거나 재개발의 흐름 속에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되었다. 해질 무렵 달려 내려오던 언덕에서 바라보던 도시의 풍경과, 넓어보이던 2차선 도로의 건너편까지.. 모든 것이 사라졌다. 서울이 고향인 이들이 자신의 과거를 '향수'가 아닌 '연민'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사라져버린 것이며, 또한 사라져버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라져버린 기억은 더 이상 그것을 재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도시 주변에 남은 과거의 흔적들은, 그것이 개발되어야 하며 신축 아파트로 대치되어야만 한다는 도시인의 감정과 혼재되고 만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의 기억을 사라져도 될 것으로, 개발을위해 희생해도좋을 것으로치부해버리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2.
기억 속의 넓은 도로가 사실은 비좁았음을 확인하던 날이 다가왔을 때, 나는 마치 내 어린시절의 기억들까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뒤바뀌는 듯하여 상처를 받았었다.

변화와 발전의 속성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는 도시. 서울은 과거의 길들과 그 속에 남겨놓은 나의 기억들을 더욱 축소시킬 것이며, 그결과 간격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과거의 거리와 시간의 흔적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찾는 것에 실패할 것이다. 그리하여 포기하는 것이 한층 쉬우리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기억 속에만 존재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3.
고향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작은 방과 내가 오가던 조그마한 동네와 그들을 연결해주던 몇 개의 굽은 골목들이 과연 내 고향의 경계였을까? 작은 방에서조차 내몰린 아이들이 찾아간 곳은 과연 어디였을까? 적막한 숲과 소리 없는 풀들의 위로가 허용되지 않는 도시에서, 아이들은 과연 어느 곳으로 찾아드는 것일까? 우리는 도시의 소음과 회색빛 건물과 무거운 공기 속에 숨어들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시간과 공간은 동경이며 환상이기에 아름다울 수 있었다. 그러나 내 고향은아이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이른 저녁의 익명의 놀이터에 더 가깝다. 전신주의복잡한전선은여러 형태의다각형을 이루며 하늘을 가르고,지하철은 지상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서로 교차하였다. 깨진 시멘트와 말끔하지 못한 도로 포장, 어긋난 집들.. 의 도시.
그것이 서늘함으로 기억되는 것은 도시의 속성에 기인할 뿐이다. 그 무엇하나 지속되지 못하였기에..

아이들은 도시의 소음과 회색빛 건물과 무거운 공기 속에서도 재미를 찾았고, 그것들을 이용해 노는 법을 터득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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