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선형적 사유

컨설팅을 위한 프로세스의 중요성에 대하여

by 늙은소 2005. 7. 12.


아침 출근시간의 붐비는 지하철에 대한 기억이 오늘 되살아난 것은 새로운 회사로의 첫시작이 불러온 또 하나의 변화에 해당한다. 발 디딜 틈을 차지하기 위한 미묘한 신경전 속에서 일순간 답답해진 공기에 질식할 듯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변화에 익숙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상기함으로써 이 경험을 일상화하기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러나 지하철이 강남역에 이르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2/3 가량의 승객이 모두 하차해버린 것이다.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직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깊고도 긴 호흡을 한 후, 사당동에 이르는 동안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여러 생각과 추측을 해보게 되었다.


일차적으로 ‘강남역에 위치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의 인구가 많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대단히 많은 요소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이다.


내가 타고 있던 지하철은 사당역 주변에 위치한 사무실에 9시까지 도착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대부분의 많은 회사들이 채택한 출근시간의 기준을 적용해봤을 때, 해당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려는 사람이 내려야 하는 한계범위를 산출할 수 있다. 그 지하철이 신도림역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시계가 9시 이후를 가리키게 된다. 신도림역 근처에 위치한 회사에 9시까지 출근해야하는 사람들은 애초에 이 차를 타지 않았어야 옳다. 그렇다면 강남역에서 내린 승객들의 대부분은 강남역 주변, 도보 20분 거리 내의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가정은 당시 함께 타고 있던 승객들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초기의 질문, ‘강남역에 위치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의 인구가 많은가’에 대하여 해답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10분 전 지나간 지하철에서의 상황, 한 시간 이후에 지나가는 지하철에서의 상황 역시 유사할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대체로 모든 시간대의 지하철이 비슷한 양상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강남역에서 하차하는 승객들이 많다고 답할 수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출근 시간대 전후의 모든 지하철을 타본다면 어떨까? 이것이 과연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을까?


서초역에 도착할 때 즈음하여 이 방법이 대단히 비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출근 시간대 전후의 모든 지하철을 타본다는 것은 하루에 체험할 수 없는 경험에 해당된다. 장기간에 걸친 현장 체험보다는 우회적이면서도 객관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강남역 지하철 승강장에서 하차하는 승객들의 비율을 어림잡아 짐작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지하철 안이라는 공간을 벗어남으로써, 다소 거리를 두고 상황을 관찰하고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객관성을 보장하기 어려우며, 지각을 감수해야한다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하게 한다. 결국 관찰에 의한 방법이 아닌, 자료수집을 통한 분석법을 적용하는 것이 적합한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출근시간대를 전후하여 강남역에서 하차하는 승객들의 수와 동일 시간대에 하차하는 승객들의 수를 비교할 수 있도록 지하철공사에 자료문의를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강남역 주변의 직장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의 지하철 이용실태조사’같은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당역에서 내리며, ‘강남역 주변에 위치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의 인구’는 ‘강남역 주변에 위치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의 인구’에 대한 인구통계학적 자료를 찾아봄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러한 답을 내리기까지 강남역에서 사당역에 이르는 거리가 필요했던 것은 내가 ‘지하철 안’에서 이 문제를 생각했고, 그곳에서부터 문제를 확대시켜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문제를 지닌 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컨설팅 뿐 아니라 모든 작업에 걸쳐 ‘프로세스’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함정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함이다.


컨설팅 프로세스에서 자료 수집단계는 상대적으로 초기작업에 해당한다. 만약 우리가 ‘문제상황’에 대한 인식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면, 그 다음 단계에서 행해지는 자료수집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간과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프로세스에 대한 인지는 프로젝트의 전체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다. 문제의 진단과 해결을 위한 자료만을 수집하게 된다면, 후반작업에 해당하는 실행과 유지, 보수의 단계에서 새로운 자료를 추가로 수집하게 될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프로젝트의 방향이 달라지는 일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컨설팅은 당면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점검하여 이를 해결하고, client가 이후에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방법론을 제시하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에 함몰되지 않는 거리 유지와 상황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지하철에서 생각한 문제를 지하철 안에서만 해결하려 한다면 잘못된 결과를 획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를 외부로 이끌어내고, 한 단계 높은 층위에서 객관화된 자료와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이를 검토하고 답을 제시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프로세스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