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그렇게 증폭과 중첩을반복하며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섞어 나갔다. 고유하던 파장은 서로 섞임으로써 불필요하게 커지거나 작아졌으며, 메시지는 뚜렷함을 상실해버린다.
그들의 외침은어느 곳에도 흡수되지 못한 채, 시끄러움으로.. 뒤섞인 짜증스러움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날아드는 곤충의 짜증스러운소음처럼, 확성기는 혼자만의 비행을 하고 있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들렸다. 그들의 집회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들리는 그 노래는, 숭고함으로 기억되는 집회에의 기억을 훼손시키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집회를 숭고함으로 기억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려는 듯..그 노래는 짧은 순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왜 그날의 뜨거움과 함성에 '숭고함'을 부여하려 하는 것일까?과거의 기억에낭만성을 첨가하고, 다시 그것을 아름답고도 비장미 넘치는 추억으로 만들어버리려는 노력은 왜 이루어지는가. 사소해보이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촛불이 사용되고, 장엄하던 노래들이 쓰일 때, 왜 나는 지켜져야할 무엇이 박탈당한 것처럼 생각되는 것일까?촛불시위는 이러이러한 경우에만 사용해야한다는 규약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어설픈 집회에서는사용하면 안될 금지곡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 그런 규칙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내 기억을 포장하고 싶고, 지키고 싶다고 종종 생각하게 된다.
촛불시위도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시위와 노조들의 시위가 일반적인 모습이었고, 그들은 대체로 야간보다는 주간을 활용하여 자신들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좀 더 뚜렷하게 제시하려 하였다. 그러나 두 여중생의 죽음, 대통령탄핵과 같은 사건들이 발생하며 10대 청소년에서 과거의 시위를 기억하는 40대에 이르기까지 참여자의 폭이 넓어졌고 더불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야간시위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교이후와 퇴근시간 이후를 활용하겠다는 목적이 야간시위로 이어지고, 그것이 촛불시위로, 다시 이미지적이며 감상적인 방향의 이벤트성 시위문화로 바뀌어가는 과정은 주목해야할 변화이며, 또한 그만큼 위험할 수 있는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왜 촛불시위는이성보다는 감정을 고양시키는 것인지..그런 의문이 발생한다. 촛불의 무엇이 우리의 감성적 측면을 자극하는 것일까?
어제 그러한 생각으로 잠시 촛불을 바라보았다.
좁은 공간을 밝히며 흔들리는 촛불들의 이미지를 응시하다보니, 미약하게 흔들리는 불빛들이 사물을 여러 겹의 그림자로 표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강렬한 단 하나의 빛은 그것을 반사하는 사물의 정확한 형태와 색상을 명확히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개의 촛불들은 정지한 사물에게도 흔들림을 부여하고, 명확한 형태보다는 희미한 윤곽을 제시할 뿐이다. 이것은 르네상스 회화(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흔히 모나리자에 대한 분석과정에서 자주 언급되는 스푸마토 기법은 형체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고, 겹치듯 표현함으로써 보는이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대로 사물을 바라보고 이해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즉 자신의 감정이 이입되어 사물의 표정을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촛불의 힘이 그렇다. 여러 개의 그림자로 분열되고 다시 겹쳐진 이미지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리와 융합하며 해석된다.
밤의 어두움이 제공한 장막 속에서 시위에 참여한 개개인의 이미지는 삭제되고, 그 위에 여러 개의 촛불이 형상화한 이미지들의 겹칩효과가뿌연 이미지와 결합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첨가한다. 그것이 동일화의 방식으로 참여자 모두에게 수용되고, 집단이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로 인식되는이유가 된다.
촛불시위가 하나의 흐름처럼 받아들여지는 요즈음의 시위문화에 대하여, 진실을 향한 집요함과 다양한 목소리는 가려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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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는 2005년 6월에 쓰여진 글입니다. 촛불시위와 관련하여 글을 쓰면서 이전 글에서 내용을 확장시켜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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