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에 심심풀이로 썼던 글 일부 *
....................................................
20세기 거대한 반동의 물결은 예술분야에서 인상주의의 부정으로 나타난다. 이 전환은 르네상스 이래 다른 어느 스타일 변화보다 더 심각한 예술사상의 단절이라 할 수 있다. 이제까지예술은 자연주의적 전통을 전면으로 부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형식주의와 반형식주의 사이에서의 변동은 늘 있어왔지만 자연에 충실하고자하는 예술의 과제는 중세 이래로 지켜져 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19세기말에 등장한 인상주의는 4백년간 계속되어온 예술관의 종착점이었다. 인상주의 이후 예술은 처음으로 현실의 표현을 포기하였고, 고의적인 왜곡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려 했다. 물론 인상주의 내부에도 이러한 욕망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이제 자연과 예술은 이제까지의 화해적인관계에서 벗어나, 폭력적이라 할 만큼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현실세계와 양립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그로부터 탄생하였다.
회화는 회화적 가치를 부정했으며, 시는 정서의 조화와일관성있게 구성된 이미지를 배격하였였다. 음악은 멜로디와 음조를 파괴하였다. 이제 더 이상 예술은 즐겁고건전하고 장식적이지 않으려 한다.그들은 그로테스크한 면에 눈 돌리기 시작했으며, 암담하고 침울하며 고통에 찬 것, 혹은 잊혀졌던 민족적인 정서를 표현하였다. 과거와의 단절에 대한 집착은 기존의 모든 것에 대한 파괴로 이어졌고, 새로운 양식의 창조가 그 공간을 채워나갔다.
왜 그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였는가?
현대 예술의 중요한 요소로 왜 부정성(negativity)이 등장하게 되었는가?
다다(Dada)를 회상하며 쓴 한스 리히터의 글에서 그 답을 찾아보도록 하자.
‘우리 모두는 동일한 생명적 충동에 의해 자극받고 추진되었다. 이러한 충동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현존하는 모든 예술 형식의 해체와 파괴를 감행할 수 있었고, 저항을 위한 저항을 감행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를 자기 폭발적인 부글거림으로 몰고 갔으며, 그에 못지 않게 뜨거운 찬성, 찬성, 찬성 에 맞춰 노한 음성의 반대, 반대, 반대 의 구호를 부르게 했다.’
주인이었던 세계와 그들의 모든 가치가 '자유'를 위해 거부되었다. 실재와의 투쟁에 있어서 예술은 하나의 무기가 되었다. 이제 예술에는어떠한 실재도 존재할 권리를 소유하지 못한다, 단지 실재에 대한 풍자화 만이존재할 뿐이다. 실재에 대한 지각이 상실되자, 사실주의적인 예술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비정상적이며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추구한다. 자신이 신봉할 수 없는 낡은 가치 체계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암울함과 소외된 것들에 눈돌렸고, 내면으로 침잠한다.
기계주의와 합리성이 가져온 세계의 모순에 직면한 예술가들은,세계를 변형함으로써 반인간적이며 반세계적이고자 했다. 이 변형이 데포르마죵(deformatin)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독일을 중심으로한 지역에서 일단의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후의 사람들은 그들을 ‘표현주의자’라 부르기도 하지만, 이것은 제대로 된 명명법은 아니다. 실제 표현주의라 함은 ‘감정이나 정서적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예술’을 일컬을 수도 있으며, 표현 그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놀드 하우저는 ‘예술과 소외’에서 마니에리즘솨 매너리즘을 구분하여 사용했는데, 마니에리즘은 미술사학이 사용하는 술어로 르네상스 이후의 시기에 대한 양식의 정의이며, 매너리즘이란 미적 판단의 문제이고 비평가의 용어로 구분하였다. 마찬가지로 표현주의 역시 광의의 의미와 미술사학적인 의미에 차이가 있다. 광의의 의미로는 시대적으로 '그뤼네발트'나 '히에로니무스 부쉬'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작가의 내면을 표현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예술 전반에 걸쳐 두루 사용할 수 있다.
이제부터 표현주의 회화가 만화와 현대예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
[그림1] 슬램덩크
첫 칸, 중앙을 향하고 있는 직선들은 카메라가중앙의 강백호를 향해 급격한 속도로 떨어지는 것 같은 운동감을 표현하고 있다.이것은 독자로 하여금 상황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며,선의 심리적 작용을 고려한 기법이라 할 수 있다.
강백호의 말풍선을 유심히 살펴보자. 말풍선은 등장인물의 대사를 전달하는 것 외에도, 그 형태를 통해 소리의 크기나 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말을 할 수 없어말줄임표로만 채워진 강백호의 말풍선이터지는 듯 외곽을 향하고 있다. 이것은 소리의 크기가 아닌, 감정의 폭발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그림 2] 보이
만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배경 처리는 표현주의적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흥분과 놀라움, 혼란스러움 등 다양한 감정표현을 나타내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배경처리방식이 도입되고 있는가 떠올려보자.
순정만화 키스장면에 얼마나 많은 장미 꽃잎들이 휘날렸으며, 음모를 꾸미는 주인공의 배경에는 어떤 소용돌이가 몰아쳤는지..
지금 이 만화의 주인공들은 '성인비디오'를 빌려와 놓고는 막상봐야할 순간이 다가오자 당황해 하고 있다. 그들의 배경으로 감정상태를 유추해보자. ^^
이제 익히 잘 알려진 그림을 활용하여 표현주의적 기법들을 이해해보도록 하자.
가볍고, 산뜻한 느낌의 배경에 놓인 모나리자와, 왜곡된선들 사이에위치시켰을 때의 모나리자를 비교해본다.
[그림 3] 모나리자 (출처 : 만화의 이해 - 스콧 맥클루드)
[그림 4]
컬러나 표현방법을 변형시키는 것 역시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레드와 블루의 대비가 강렬한 모나리자는 사실적인 묘사기법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강렬한 컬러 대비로 인해 불안정한정신병적 인상을 준다.(상단 좌측)
우측 하단의모나리자는 낮은 채도와 번진 검은 물자국 때문에 우울함과 어두움, 병약함을 드러낸다.
좌측 하단의 모나리자는판화(혹은 아크릴화)적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단순한 형태와 밝으면서도 대비감이 있는 컬러를 사용하여, 형태가 아닌 컬러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처럼 표현주의는 선,형태, 컬러, 표현기법 등 다양한요소들을 통해재현되고 있다.
...
눈에 보이는세계를형상화하는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르네상스 이후, 고전주의,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을 지배해왔다. 그러나'본다는 것'과 '보이는 것', '눈이 보는 것'과 '마음이 보는 것'의 차이에의문이 제기되었다.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을 통해 인간 내면을 탐구하였고,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통해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노래하였다.또한 융은 원형에의 접근을 연구하였다. 이 시기에아프리카 민속예술과 집단 의식 등이 소개되면서 예술가들에게 보다 근원적인 내면세계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그것은 특수성, 개별화된 개인으로부터 탈피하여 보편적인 존재에 대하여 탐구하는 것이며, 그러한 상실의 공간에서 소통을 희원하는 일이었다. 예술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초 현실'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함이며, 그로부터 단순화된 새로운 화면이 펼쳐졌다.
모나리자는 Identity를 버리고 '누구나' 대입 가능한 얼굴로 변화했다.
그리고 점차 단순화된 후 그것은 하나의 Icon, Pictogram이 되었다,
더 이상 단순화 할 수 없는 이미지의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개념'와 '언어'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회화는 단순화와 추상화의 시간을 경험한다. 그리고 더 이상 경계를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되던 때 회화와 언어의 결합이 이루어졌다.('face' 로 구성된 얼굴처럼)
'비선형적 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Inside (0) | 2006.01.30 |
---|---|
촛불시위의 낭만성에 대하여 (0) | 2005.12.29 |
컨설팅을 위한 프로세스의 중요성에 대하여 (0) | 2005.07.12 |
순수성이 판단력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0) | 2005.07.05 |
심야의 성인영화 (0) | 2005.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