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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26

20141001 - 재능기부 내가 담당하고 있는 아이는 현재 중학교 1학년으로 남자아이다. 보육원에 온 것은 얼마되지 않으며, 이 곳에 오기 전까지 아버지에 의한 가정 폭력 문제를 겪었다고 한다. (꽤 심각한 수준이어서 현재도 약물 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중이다) 몇 달 동안 수업을 하며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영민한 편이고 또 한 때 공부를 잘했다며 그런 자신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현재로서는 공부를 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좋은 성적을 받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혼자서 공부하는 습관이 없으며, 보육원에 오기까지의 과정과 보육원에 와서 적응하기까지 걸린 2년 동안 학교에서의 수업을 거의 듣지 않은 듯 했고 5~6학년 과정이 그대로 누락이 된 듯 하다. 이 아이를 가르친지 벌써 5개월이 넘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 2017. 9. 15.
밤 산책 01. 밤마다 산책을 한다. 새로 들어선 디지털단지 앞 불 꺼진 상가들을 구경하며 걷다가, 그 옆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가 내부 시설을 구경하며 또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은 아파트 단지를 건너뛰어 안양천까지 일직선으로 걸어간 다음 여길 내려갈 수 있을지 살펴본 다음 되돌아왔고, 그 다음 날에는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 안의 낡은 놀이터를 어슬렁거렸다. 직선으로 걷거나 좁고 구불거리는 길을 택하거나. 밝은 곳을 찾아다니다가 어두운 곳을 가슴 졸이며 걷기도 한다. 산책하는 시간이 주로 밤 12시 무렵이다보니 대체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산책을 나가게 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든다. 걷다보면 감정의 허영에 빠지기 쉽다. 자기애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정신을 피곤해진 다리로 애써 지탱하는 기분. 생각이 끝없이.. 2017. 8. 21.
옥상의 클라라 닉네임으로 서로를 구분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초등학교 교실이 몇 명의 학생을 수용하였는가를 밝힘으로써 서로의 나이를 짐작하기도 한다. ‘네? 한 반에 학생이 60명이 넘었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내가 겪은 교실은 57명이었고,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까지였다. 학교를 어떤 형태의 놀이터로 삼아야 할지 방향을 찾지 못한 1학년 아이들은 동네 골목에서 하던 놀이를 교실에서 재현하다 선생님에게 혼나기 일쑤였고,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동네 아이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했다. 당시 내 골목 친구는 전파상집 큰 딸 영선이었다. 우리는 그 골목에 단 둘뿐인 동갑내기 여자아이들이었고, 2년 전 이 곳으로 이사온 바로 다음날부터 친구로 지냈다. 두 .. 2017. 5. 29.
사람 죽이는 타일 머리는 하루에 한 번을 감고, 샤워는 하루에 두 번을 한다. 일어나서 한 번. 퇴근 후 집에 와서 한 번.4년 전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퇴근하자마자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챙겨 욕실로 들어간 다음 옷과 타월을 욕실 안 옷걸이에 걸어놓고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가 물을 틀었다. 찬 물이 몸에 바로 닿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라 물을 틀기 전 샤워기 헤드가 옆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샤워기에서 나온 물이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따듯한 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샤워를 시작했다. 어쩌다 넘어졌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넘어지던 순간이 스냅사진처럼 몇 장의 이미지로 기억될 뿐이었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 있어야 할 연속.. 2017. 5. 28.
20140821 - 재능기부 01. 수학 수업을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났다. 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성적이 급상승하였다면 영화같고 좋겠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성적이 더 떨어지고 말았다. 가르치기 전 수학 점수가 40점이었는데, 내게 수학을 배운 뒤 26점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하하핫...... ㅠㅠ....... (저런 점수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돈 받고 하는 과외라거나, 학원이었다면 아마도 난 바로 잘렸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토록 무능하다니!!!! 뭐 이런 것도 있지만.... 시험 문제가 너무 쉬워서 찍을 필요조차 없는 난이도인데 그걸 틀린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충격 요인이었다. 그 동안 배운 것을 조금만 생각했더라도 도저히 저 점수는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 2017. 4. 23.
20140701 - 재능기부 01. 수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생각한다. '무엇때문에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수업시간에 아이를 잘 가르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투입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가 사용된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음의 각오는 해두었었다. 아이가 내게 고마워하길 바라지 말자. 보육원에 성정이 거친 아이들도 많을 것이며, 폭력적인 아이들도 많을테니 그 아이들과 어울려 어느 날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더라도 너무 상처 받지 말자. 성적이 오르지 않고 수업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말자. 내가 없는 곳에서 나를 욕하고 험담을 하더라도 상처 받지 말자. 이런 각오 말이다. 아이는 아이고, 아이이기.. 2017. 3. 8.
20140622 - 재능기부 01. 5월에 시작한 재능기부는 매 주 방문을 하여 2시간씩 수학을 가르치는 일이다. 일반 봉사가 아니라 수학 과외 형식이어서 수업 준비를 하는데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보통 보육원에서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문을 한다) 집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다,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봉사자의 방문이 적은 곳이라던데..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 처한 곳이고, 무엇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가 정신적인 문제까지 안고 있어서 힘이 든다. 평일에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하고 토요일마다 보육원에 찾아가 무보수로 수학을 가르치다보니 일요일이면 잠을 자는 것 외에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 되었다. 02. 현재 가르치고 있는 아이는 중학교 1학년으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2017. 3. 7.
20140515 - 재능기부 01. 해마다 많은 수의 고등학생이 수학여행 길에 오른다. 우리 때는 대부분의 수학여행지가 경주였고, 단체로 대여하는 버스와 숙박비가 주를 이루는 경비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안 되는 그 수학여행비가 부담스러운 어머니는 내게 수학여행을 가지 말라 하셨고, 나는 쉽게 포기했다. 서운한 마음은 없었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다만 조금 난감할 뿐이었다. 돈이 없어서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 할 수는 없었으므로 나는 있지도 않은 집안 행사를 지어내 거짓말로 둘러대야 했다. 그런 게 번거로울 뿐이었다. 02. 거대한 선박과 함께, 수 백명의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 가라앉았다. 한 달 전의 일이다. 비리는 끝이 없었다.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던(설마 이 정도로 사회가 부패했을 .. 2017.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