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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하나 : 사무라이가 사무라이답지 않게 살아남는 법

by 늙은소 2007. 5. 2.

하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오카다 준이치,미야자와 리에

개봉 2007.04.19 일본, 127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무사집안의 장남인 아오키 소자에몬(오카다 준이치)은 아버지의 죽음 이전까지 무사가 되는 일에 관심도, 재능도 없던 젊은이였다. 그런 그가 지금 빈민가에 숨어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고 있다. 가족들은 집안의 명예를 드높여줄 그의 복수를 좋은 기회라 여기고 있으며, 아오키 역시 그러한 기대에 어떻게든 부응하고자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그에게 무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데 있었다. 그에게 있어 복수란 상대를 제거하는 것이기에 앞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가족들은 그에게 복수를 종용한다. 무사로서의 이미지가 개인의 목숨보다 중요한 사회가 바로 영화 [하나]의 시대이다.




사무라이 계급의 시작은 개인 호위대로부터 비롯된다. 중앙 정부가 소집한 군대가 국가 중심의 사고체계를 군인들에게 주입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고용하는 사무라이는 주군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무사를 고용하는 것은 양날의 검을 다루는 것과 같아서, 그들의 배반은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사무라이들은 필요 이상 명예를 고집하는 계급으로 발전하였고, 결국 명예를 위해 희생되는 계급으로 변이하게 된다.


사무라이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에도시대, 그들은 이미지를 통해서라도 자신들의 계급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 이미지는 명예를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영웅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는 스타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천재적인 인물을 부각시켜 해당 분야의 관심도를 높이려는 노력은 연예계나 스포츠를 넘어 모든 분야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다. 관성의 법칙은 물리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계급과 집단에도 관성의 법칙이 있어 일단 계급이 형성되고 나면 어떻게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움직여야 하고, 동력을 이끌어내게 된다. 문제는 동력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가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것이다.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멈춰준다면 좋겠지만, 역사상의 많은 집단들은 순응하기보다 거부할 것을 선택하였고, 동력원을 얻기 위해 희생자를 만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주인공 아오키는 그렇게 선택된 희생자였다.




[하나]는 사무라이 계급의 허상을 꼬집으면서 동시에 이를 비켜가는 유머를 담고 있는 영화이다. 주인공인 아오키는 결국 복수를 실행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복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해결방안을 선택한다. 그의 복수극은 복수를 포기하는 것이기 보다는 복수를 체현하는 통과의례에 가깝다. 복수를 완성한 것과 같은 유사경험을 통해 아오키는 복수를 단념할 수 있었고, 가족들은 복수가 성공했다는 거짓된 믿음을 얻게 된다. 이때 만개한 벚꽃의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다시 한 번 영화의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흩날려 떨어지는 벚꽃은 생에 대한 미련이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년에 다시 필 것을 알기에 그러한가. 삶에 있어서도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가 있음을 긍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큰 차이가 있음을 영화 [하나]는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벚꽃이 왜 그리 아름다운지, 복수를 완성한 사무라이의 이야기에 왜 사람들이 감동하는지 결론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 똥을 팔아 떡을 얻고, 얻은 떡을 먹고 다시 똥을 생산해내는 빈민가 사람들의 삶처럼 영화는 닭과 달걀 중 누가 먼저인지 선뜻 결정하지 못한다. 복수를 포기한 아오키의 결정은, 뜻밖에 전혀 엉뚱한 결과를 불러오고 오히려 복수를 찬양하는 추동자들을 만들고 만다. 이런 이중성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 수도 있겠지만, 흩어진 꽃잎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은 어떨 수 없는 단점이 된다.


...

이 영화를 꽤나 기대하며 보았었다. 코미디라는 분류와, 경쾌한 시대극이라는 설명에 혹 한 탓이다. 가뜩이나 현실의 문제들 때문에 우울하였던 터라.. 밝은 희극이 절실히 필요하던 때였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 영화를 두고 경쾌하다느니.. 웃음을 터트렸다느니 이야기하였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포스터에서는 화창한 봄날 떨어지는 꽃잎 속에서미소지은 사람들만 보이는데... 막상 영화 안은 어두운 밤이 계속되었고 침침한 불빛 속에서 사람들은 결연하지 못한 자신의 의지를 비관하고만 있지 않은가. - -; 속았다.


유쾌함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진지한 마음으로 좋게 보았을 수 있었을텐데.... 예상 밖의상황에 머리가 더욱 아파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