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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우아한 세계 : 원형 경기장 속의 삶

by 늙은소 2007. 5. 2.

우아한 세계

감독 한재림

출연 송강호

개봉 2007.04.05 한국, 112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고대 로마시대에 전성기를 이루며 성행하였던 검투사들의 경기는 스포츠라고 불리기에는 그 룰이 지나치게 잔혹하였다. 경기에 참여하는 검투사들은 모두 상대의 목숨을 거둬들일 수 있는 무기들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런 이유로 싸움은 처절하였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 앞에선 자들의 공포가 원형의 경기장을 뒤덮었다.
상대의 죽음은 승자를 증명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죽음이 아니어도 승자와 패자가 결정지어진 경우도 있다. 이때 칼을 겨눈 자는 패자가 된 상대를 놓고 관객들에게 묻는다. 그를 죽여야 할 것인지.



한재림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우아한 세계]는 잔혹한 삶의 극단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강인구(송강호)는 온몸에 무기를 두른 채 삶의 원형경기장에 던져진 검투사마냥 처절한 삶을 살고 있다. 폭력조직의 중간보스인 강인구는 길가다 언제 칼 맞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 속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햇빛 잘 드는 집으로 이사할 것을 꿈꾸는 한 집안의 가장이다. 그러나 그가 꿈을 이뤄가는 방식은 정작 그 꿈의 중요한 일부분인 가족들이 그를 외면하게 하는 이유가 된다. 사춘기인 딸은 조폭인 아버지를 부끄러워하고, 조폭을 그만두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그에게 염증을 느끼는 아내는 그를 떠나려 한다.


강인구의 모습에 공감하게 되는 것은 룰은 다르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도 원형경기장 안의 검투사처럼 날로 처절해지기만 하는 경쟁과 맞닥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강인구의 경기장이 육체적 생명을 놓고 벌이는 경기라면, 일반인들의 삶은 인간의 자존감을 놓고 벌이는 경기라 할 수 있다.


영화 곳곳에서 인구는 늘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 이른 아침의 전철에 시달리는 샐러리맨도 아닌 그에게 잠이 턱없이 모자랄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그가 그만큼 삶의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에게는 조폭으로서 참여하는 경기 외의 또 하나의 경기가 놓여 있다. 자신으로부터 자꾸만 멀어져가는 가족들을 붙잡기 위한 싸움. 조폭의 룰에 익숙하고 또한 그곳에서 승자인 인구는, 그러나 가족이라는 경기에서는 패배를 반복한다. 그는 가족의 룰을 알지 못한다. 사춘기인 딸의 방을 함부로 뒤져서는 안 된다는 것도, 딸의 담임에게 룸싸롱 티켓 따위 건네서는 역효과만 불러올 뿐이라는 것도. 많은 가장들이 두 개의 경기장을 오가는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이 늘 피로한 것은 전혀 다른 룰을 적용하는 전혀 별개의 경기를 동시에 수행해야하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적어도 한 개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다.


[우아한 세계]는 현실의 치열한 삶과 함께, 가족의 경계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한재림 감독의 전작인 [연애의 목적]이 그러했듯, 그의 영화들은 일상적이며 상투적이었던 가치들을 무참히 짓밟는 강점을 이번에도 드러낸다. [연애의 목적]이 연애의 낭만성을 짓밟았다면, [우아한 세계]는 가족을 건드린다.




흔히 패밀리라고도 불리는 조직폭력 내부의 갈등은, 절대 배신할 수 없는 형님 노회장과 친아우였으면 좋겠다 여겨지던 강인구의 관계가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보여준다. 인구에게 가족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 것이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며,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가족이라 생각한 이들은 그와 달랐다. 그들에게 가족은 이기주의를 드러내도 좋을 대상이며, 상대의 희생을 강요해도 될 경계였다.


캐나다에서 도착한 비디오테이프 속 가족들은 커다란 TV 모니터 앞에서 한껏 자신들의 이기주의를 뽐내고, 그 앞에서 인구는 한 없이 초라하고 작아진다. 그는 ‘왜’를 묻지만 가족들이 요구하는 경기 규칙은 그에게 너무 어려웠다. 딸의 방문을 열지 않는 것이나, 일기를 함부로 읽지 않는 것은 작은 규칙들일 뿐이다. 조폭의 세계를 점점 닮아가는 바깥의 삶처럼, 가족의 삶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모든 것을 감싸준다던 계명은 희미해졌고, 서로의 이기적인 목적이 가족 안에서도 충돌하는 것이 요즘의 가족이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강인구는 미련하고 어리석으며, 그만큼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