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읽기

못 말리는 결혼 : 정말 반대할 마음이 있긴 한 건지

by 늙은소 2007. 5. 15.

못말리는 결혼

감독 김성욱

출연 김수미,임채무,유진,하석진,안연홍

개봉 2007.05.10 한국, 115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오래 전 읽은 글 중 ‘Shakespeare in the Bush'라는 알듯 말듯 한 제목의 산문이 있다. 한 인류학자가 나이지리아의 티브족에게 햄릿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다룬 글이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햄릿의 비극을 설명하고자 하였으나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간다. 햄릿의 숙부가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한 상황에 대해서도 추장은 현명한 처사라고 판단한다. 우리나라 식 표현으로 하자면 ’형사취수법‘에 해당하는 규칙이 티브족에게 있던 것이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집안을 이끄는 것은 이곳의 관습이었다. 오필리어 역시 죽어 마땅한 여자 취급을 받는다. 티브족은 신랑측으로부터 지참금을 받고 여자를 결혼시키기 때문에 가족의 의견에 반대되는 남자를 선택할 권리가 여성에게 있지 않았다. 햄릿을 사랑하는 오필리어의 행동은 지참금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며,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인류학자는 햄릿의 비극적 구조를 이들에게 설명하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차이라는 것은 늘 이런 식이다. 햄릿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였네 아니네 하는 것과 같은 차이는 사실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의 의견교환에 불과할 때가 많다. 실제의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차이들은 인류학자와 추장과의 대화처럼 전혀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 간의 불협화음과 같은 것이어서, 아예 말을 말자며 뒤 돌아 앉게 되는 것이 태반이다.



[못 말리는 결혼]은 이처럼 아예 말을 말자며 상종하지 않는 게 보통인 두 집안 간의 결혼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부동산 재벌 심말년(김수미)과 전통을 수호하고자 하는 풍수지리가 박지만(임채무)에게는 각자 아들과 딸이 있다. 심말년의 아들인 왕기백(하석진)은 돈 많은 집안과 의사인 신분을 적극 활용해 유흥업 매출에 이바지하며 바람둥이로서의 본분에 충실히 살아간다. 박지만의 딸인 박은호(유진)는 공방을 운영하는 참한 아가씨이지만 주말만 되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슈퍼영웅마냥 제법 과격한 레저를 즐기는 여성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기백과 은호는 우연한 만남을 통해 서로 사랑하게 된다. 동화였다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을 맺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은 두 사람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고, 두 가족 간의 경제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가 클수록 잡음 또한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부유한 집안과 그렇지 않은 집안, 서구지향적인 삶과 전통적인 삶, 돈으로 안되는 게 없다는 쪽과 돈이 다가 아니라는 쪽. 모든 것이 반대이기만 한 두 집안은 결혼을 결사반대하고, 결혼을 말리기 위한 온갖 작전이 동원된다.


이런 류의 코미디영화가 모두 그러하듯, 결론은 해피앤딩이다. 집안간의 화해로 두 주인공은 결혼에 성공하고, 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것이다.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이 어찌 그리 쉽게 화해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영화가 좀더 현실적이었다면 심말년 여사는 당장 기백의 돈줄부터 차단하고 시작했을 것이다. 물론 강제로 유학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박지만의 경우에는 딸의 효심을 공략하여 몸저 눕기부터 했어야 옳다. 아버지 상부터 치를 각오를 하라 엄포를 놓는 것이다. 일단 만나지 않게 하는 것이 갈라서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심말년과 박지만은 정녕 몰랐던 것일까?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들이 이렇게나 자주 만나 어울려 다니다니, 반대할 마음이 있긴 한 지 의심스럽기 시작한다.




아무리 큰 차이를 지닌 이들이라 해도, 자주 만나다보면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기백과 은호가 사랑하게 된 것도 결국 자주 만나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탓이다. 사연 없는 사람 없고, 핑계 없는 무덤 없지 않은가. 속물로만 보이던 심말년에게도 가슴 절절한 사연이 있고, 고루해보이던 박지만에게도 순정이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세상에 나쁜 사람 하나 없다”는 말은, 역으로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해 자세히 알아선 안 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극도로 화가 났을 때 사람들은 “듣고 싶지 않다”고 냉정히 말한다. “내 집안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라”는 말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그들은 상대를 용서하거나, 이해할 최소한의 가능성마저 차단함으로써 현재의 ‘화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이런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무턱대고 반대만 하는 사람은 자칫 무식해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가 드러내고자 한 것은 자신의 강력한 반대 의지이다. [못 말리는 결혼]의 주인공들은 온갖 엽기적인 수단을 동원해가며 자신의 반대의지를 표명하지만, 적어도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이들이었기에 화해를 일궈낼 수 있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면, 듣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다. 요즘은 믿음보다는 이해가 더 절실한 세상인 듯하다.

...

5월 목록 중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영화 1위였던'못 말리는 결혼'. 매도 빨리 맞자며 개봉일 1회 상영을보았다. 평일 조조를 누가 보겠는가 싶었는데, 2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한 번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그래도 곧잘 웃어댄다.

영화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쓴 작가의 작품답게 유치한 코드들로 뒤섞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좋아한다고 하니..
그들과 나의차이도 제법 큰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