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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캐리비안의 해적 3 : 카리브해를 넘어 새로운 바다로

by 늙은소 2007. 5. 25.

캐리비안의 해적 - 세상의 끝에서

감독 고어 버빈스키

출연 조니 뎁,올랜도 블룸,키이라 나이틀리,스텔란 스카스가드,빌 나이,저우룬파,제프...

개봉 2007.05.23 미국, 168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카리브해를 주름잡던 해적들의 전성기는 17세기로, 신대륙 정복과 약탈이 해상무역을 크게 발전시킨 시기였다. 잉카와 마야 문명 약탈에 앞장섰던 스페인은 황금을 비롯한 각종 보물과 노예들을 실어 나르기 바빴고, 해적들은 보물을 실은 배를 목표로 삼아 약탈을 자행했다. 카리브해의 섬들은 유럽으로 떠나기 전 물과 식량을 보급할 수 있는 마지막 항구였으며, 자연히 해적들은 이 지역을 근거지로 삼았다.


식민지 개척에 있어 스페인보다 한 발 늦은 영국은 대외적으로는 스페인과 대립관계를 이루며 전쟁과 휴전을 반복하였고, 은밀히 해적들을 동원해 스페인 함선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때로 해적 활동에는 민간인 뿐 아니라 자국의 군대도 동원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정책이 변화함에 따라 그들은 군인에서 해적으로 하루아침에 신분이 전락하였고, 제거대상으로 지목되기까지 한다. 카리브 해를 중심으로 활동한 해적의 역사에는 이렇듯 해적들 간의 배신 뿐 아니라 국가로부터의 배신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그로부터 100년 후, 어쩌면 이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해적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캐리비안의 해적3편-세상의 끝에서]는 교수대에 오르는 해적들의 긴 줄로 시작한다.
동인도 회사의 세력 확장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되어 있었고, 사업에 방해가 되는 해적들을 모두 제거할 계획을 수립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9개의 해적 연합은 마지막일 지도 모르는 해적 회의 참석을 위해 하나 둘 모이기로 한다. 문제는 9명의 영주 중 한 사람인 잭 스패로우(조니 뎁)가 블랙펄호와 함께 데비존스의 바다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윌 터너(올랜도 블룸)와 엘리자베스 스완(키이라 나이틀리), 바르보사(제프리 러쉬) 등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잭 스패로우를 구하기 위한 항해를 시작한다.


한편, [캐리비안의 해적-2편]의 주요 관심사였던 망자의 함을 결국 차지하게 된 동인도 회사의 커틀러 베켓 경(톰 홀랜더)은 데비 존스와 플라잉 더치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큰 힘을 갖게 된다. 이제 영화는 마지막 힘을 모으려는 해적 연합과, 해적을 모두 제거하기 위해 전설 속의 유령선을 동원한 동인도 회사 두 편으로 나뉘고, 그들은 해적의 운명을 건 대 접전을 치르려 한다.


선원 한 명 없는 조각배에 해적깃발을 달고 스스로를 선장이라 지칭하는 잭 스패로우의 매력은 3편에 이르러 전 출연진으로 확대된다. 영화는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인물들로 가득하다. 이들은 배신과 거짓말을 일삼으면서도 특유의 낙관론을 잃지 않는데, 어쩌면 해적의 생명력은 럼주가 아닌 자기긍정의 정신에 깃들어 있지 않은가 생각될 정도이다. 그들은 배신당한 순간 분노에 떨기 보다는 어떻게 새로운 거짓말로 전세를 역전할 것인가부터 떠올린다. 후진을 용납하지 않은 배의 속성처럼, 위급한 순간 모든 화물을 내버릴 수 있는 태도로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인물들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시리즈는 앞서 말한 것처럼 해적들의 전성기가 끝난 이후의 이야기다.

데비 존슨이라는 악명 높은 해적의 전설과 바다를 떠도는 유령선의 괴담이 항구의 선술집에서 회자되었던 때. 이제 그들을 보았거나 경험한 자는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신대륙의 환상을 부추기던 막대한 양의 황금과 보물들은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모두 사라졌고,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은 더 이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 시대의 이야기. 그래서 이 영화는 해적의 숨겨둔 보물과 심연으로부터 떠오를 거대한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개척할 곳이 더 이상 없음을 알고 좌절하는 이들에게 아직 모험할 영역은 얼마든지 있다고 속삭이듯 유혹하는 것이다. 카리브해에서 아시아의 바다로, 다시 남극을 지나 아무도 가보지 못한 죽음의 바다에까지.

저주받은 운명의 해적과 거대한 바다괴물 크라켄, 여신 칼립소까지.. 신화와 전설이 이성과 과학으로 대체되는 때, 그들을 불러 세워 닫히려는 전설의 문을 열어 보임으로써 영화는 과거가 완전히 닫혀있지 않음을 확인시킨다. 물론 이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행위로 비춰지기도 한다. 18세기의 바다는 해적들에게 있어 점점 좁아지는 공간이었고, 소멸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과거를 극복하며 새로운 세대를 길러낸다. 신화의 세계가 사라질 때, 신들은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거나 다음 세대를 길러내기 위한 재료로 사용된다. 그들의 피는 바다가 되었으며 육신은 대륙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전설 속의 유령선은 새로운 선장을 맞아 새로운 임무와 새로운 얼굴로 탈바꿈한다. 앤딩 크래딧이 모두 올라간 다음 영화는 그 다음 세대를 약속하며 끝을 맺는다.

해적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멀리 모험을 떠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