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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상성 : 살아남은 자의 기억

by 늙은소 2007. 6. 8.

상성: 상처받은 도시

감독 유위강,맥조휘

출연 양조위,금성무,서기,서정뢰

개봉 2007.05.31 홍콩, 110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홍콩은 독특한 도시이다. 오랫동안 쇼핑과 관광의 도시로 성장해온 이곳은, 금융과 무역을 비롯한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철저히 구축되었다. 산업의 한 축이 과도하게 비대해진 도시는 넓은 면적과 거대한 규모를 필요로 하는 1, 2차 산업을 외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중국에 반환하기로 되어있는 도시에 옮기기 힘든 공장이나 산업시설을 세울 리 만무하다. 언제든 재빠르게 재산을 챙겨 떠날 수 있는 도시. 짐을 꾸리기 쉬운 도시의 이미지가 홍콩에 있었다. 그러나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중국인들에게 떠나기 쉬운 장소, 버리기 쉬운 문화란 것은 모순된 감정이다. 지키는 것과 버리는 것의 갈등은 홍콩의 반환을 목전에 둔 20세기 말, 세계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격심한 세기말적 증후군을 앓게 했다. 그렇게 90년대의 홍콩 느와르는 비극적이고 허무한 죽음들을 연신 그려내었고, 언제나 그 죽음에는 세기말에 가까운 허무주의가 깊이 배어있었다.
서비스 산업 중심 도시는 개인들로 하여금 생산자로만 살 수 없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홀로 농사를 지으며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을 자유가 그곳에는 희박하다. 홍콩의 삶은 다른 이들과 부딪힘으로써 가능한 산업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곳에서는 재화를 어떻게 늘릴 것인가와 그렇게 늘어난 재화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중요하고, 갈등은 늘 이 지점에서 촉발된다.




[상성]은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이다.

두 주인공인 유정희(양조위)와 아방(금성무) 뿐 아니라 유정희의 아내인 숙진과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한 유정희의 장인까지 모두가 누군가를 잃은 채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을 한켠에 짊어지고 있다. 상실을 경험한 이들은 내부로부터 큰 변화를 겪으며,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영화는 상실을 겪은 후, 다른 얼굴을 하게 된 자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3년 전, 형사인 아방과 유정희 반장은 범인을 감시하던 중 위스키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사용하던 알코올이 결국 술이 되었다며 유정희는 위스키를 삼킨다. 범인을 검거하고 돌아온 방안에서 아방은 자신의 연인이 자살한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 충격으로 경찰을 그만둔 채 사립탐정이 된다. 술의 지독함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아방은 이제 영혼의 상처를 소독하기 위해 술을 찾는다.


3년 후, 결혼한 유정희는 자신의 아내에게 아방을 소개하고, 아내는 그간 소원하게 지냈던 아버지에게 자신의 남편을 소개한다. 그리고 얼마 뒤 유정희의 장인과 집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단순한 강도사건처럼 보이던 것에 의심스러운 면이 있음이 밝혀지면서 사건은 재수사에 들어간다. 숙진으로부터 사건을 의뢰받은 아방은 유정희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추격하는 자와 은폐하려는 자는 겉으로는 한 팀이 되어 사건을 수사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속내를 속이기 위해 분주하다. 유정희는 자신을 향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치밀하게 행동하면서도 때로는 모든 것이 다 밝혀져도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상성]은 남겨진 이들로 채워진 도시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영화이다. 혼자가 된 사람들로 넘쳐나는 도시는 서로를 위로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관계를 만들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도시, 홍콩은 고독하기에는 너무 화려한 도시이다. 마찬가지로 홍콩의 삶은 홀로 지내기에는 너무 많은 관계들로 얽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복수를 위해 살아왔던 유정희는 복수가 끝난 다음, 자신이 또다시 혼자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복수의 완성을 통해 얻은 성취감은 순간이었고, 고독은 영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