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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슈렉3 : 현재 지향에서 미래 지향으로

by 늙은소 2007. 6. 15.
슈렉 3

감독 크리스 밀러,라맨 허

출연 마이크 마이어스,에디 머피,카메론 디아즈

개봉 2007.06.06 미국, 92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겁나 먼 왕국‘의 국왕 해롤드는 2편에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가며 슈렉을 구하였다. 그 후유증 때문일까? 영화는 사경을 헤매는 해롤드 국왕으로 시작한다. 다음 왕위를 누가 이어받을 것인가로 왕국은 소란하다. 하지만 졸지에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된 슈렉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죽어가는 해롤드로부터 계승 서열 2위가 있음을 알게 된 슈렉은 왕위를 대신 할 사람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말하는 당나귀 동키와 장화신은 고양이가 그 여행에 함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그런데 아내인 피오나 공주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그들의 2세가 곧 세상에 태어난다는 게 아닌가.


한편 2편에서 백마 탄 왕자의 환상을 무참히 깨트려주었던 차밍 왕자는 이제 뒷골목 주점에서 비참한 왕자연기로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다. 자신의 처량한 신세가 못내 저주스러운 차밍 왕자는 음모를 기획하고, 동화세계에서 악당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찾아내어 자신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키자고 설득한다. 이제 슈렉은 동시에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해야한다. 왕국을 지키는 것과 가정을 지키는 것.




슈렉은 언제나 현재를 지향하는 인물이었다. 1편에서 그가 모험을 시작한 이유는 자신의 늪과 조용한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또한 2편에서는 왕궁에 머무르는 내내 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랐다. 그는 변화하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 왕위를 이어받는 것도,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그에게는 모두 달갑지 않은 일이다. 현재에 대한 지나친 불만도 문제지만, 반대로 현재의 삶에 만족한 나머지 변화를 거부하게 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음을 슈렉은 보여준다.


당연하다. 슈렉은 오우어(Ogre)가 아닌가. 오우거는 사람, 특히 아이들을 잡아먹는 덩치 큰 괴물로 동화에 자주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동화로 ‘잭과 콩나무’가 있다. 콩나무를 타고 올라간 하늘에서 잭이 만난 괴물이 바로 오우거이다. 여기서도 그는 식인괴물로 정의된다. 동화 속의 오우거들은 종종 사람 뿐 아니라 자신의 자식들까지 잡아먹기도 하였다. 슈렉 역시 자신의 아버지에게 먹힐 뻔했음을 얼핏 이야기하며, 오우거인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걱정을 내비친다.


자기 자식을 잡아먹는 거대한 괴물의 이미지는 그 역사가 제법 긴 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 신화로까지 이어진다. 우라노스는 가이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죽이려 했고, 그 중 크로노스가 살아남아 우라노스를 거세한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태어난 자식들을 모두 잡아먹는다. 그러나 아내인 레아가 제우스를 빼돌림으로써 결국 살아남은 제우스에게 굴복하게 된다. 이처럼 신들이 자신의 자식을 잡아먹으려 한 데에는 시간을 거부함으로써 현재를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다음 세대를 거부한다. 크로노스가 시간, 혹은 세월의 의미로 쓰이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오우거와 잭이 대립하는 동화는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는데, 대체로 그 내용은 가난한 집안의 소년 잭이 보물을 가진 오우거를 퇴치하고 그의 보물을 차지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런 동화가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크게 환영받은 이유는 역사와 연관성을 맺고 있다. 귀족 중심 사회에서 시민 사회로 급격히 변화한 이들 지역에서는, 현재를 지키는 것 보다는 가진 자로부터 권력을 빼앗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오우거는 권력과 힘을 상징하였으며, 또한 현재를 위래 미래를 소멸시키는 존재였다.


오우거인 슈렉에게 변화는 자신의 소멸을 의미한다. 아이를 위해 자신의 현재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에겐 지극한 공포이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 겪는 공통의 공포임에도 불구하고 슈렉이 유별나게 행동하는 것은 오우거인 특수성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더와의 여행을 통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유사체험한 슈렉은 결국 다가오는 미래를 기쁘게 맞이하기로 결심한다. 변화를 즐기기로 한 슈렉이지만, 왕위만큼은 수용할 수 없었는지 끝내 ‘겁나 먼 왕국’은 새로운 왕을 맞이하게된다.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은 여기이다. 왕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인물이 왕위에 오른다는 것. 비록 학교에서 왕따로 괴롭힘을 당하긴 했어도 아더는 역시 아더왕으로 익히 알려진 인물이 아닌가.영웅답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하긴했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아더는 익히 알려진 바대로 영웅적 인물로 복원되고, 교훈적인 연설 한 번으로 왕위를 확정짓는다. 이건 소공녀 소공자가 고난에 처하긴 했어도 그 혈통이 남다르니, 결국 자신의 신분에 맞게 살게 될 것이라는 구조와 흡사하다. 슈렉이 1편에서 보여주었던 통쾌한 전복은 이제 불가능한 것일까? 그래도 작은 재미들은 여전한 영화. 슈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