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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오션스 13 : 생계형 범죄와 취미형 범죄

by 늙은소 2007. 6. 27.

오션스 13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출연 조지 클루니,브래드 피트,맷 데이먼,엘리어트 굴드,알 파치노

개봉 2007.06.14 미국, 121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벤처 열풍이 한창이던 때, 게임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게임회사에 들어가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미친 듯이 일한 덕분인지 쥐어짜 나온 아이디어가 제법 괜찮았던 탓인지,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스톡옵션이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 본래 받는 사람 마음 다르고 주는 사람 마음 다르다 하지 않던가. 그때만 해도 ‘스톡옵션을 받는다’ 하면 팔자 고치는 것으로 생각하던 시기였기에, ‘이게 무슨 스톡옵션이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서류에 사인을 한 뒤 고개를 드니, 사장은 나를 마주보며 크게 선심 쓴 사람의 예의 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 날 스톡옵션을 받게 된 직원들을 모두 불러 점심을 사겠다며 우리를 중국집으로 데려갔고, 회사의 비전이니 10년 뒤의 미래를 생각해 보자느니, 윗사람들의 전매특허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가 내게 물었다. 돈이 아주 많으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딴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잠시 당황하였으나 이내 곧 정색을 한 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돈이 아주 많다면, 소규모 엘리트 범죄조직을 만들고 싶습니다.


소심함이 지구 반대편에 닿을 정도여서 무단횡단 한 번 못하고 길에 침 한 번 뱉어 본 일 없었지만, 나는 가끔 생계형 범죄가 아닌 취미형 범죄자가 되고 싶다고 소망하곤 하였다.




부자들의 취미형 범죄를 다룬 영화는 많다.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도 어떤 면으로는 부자들의 취미형 범죄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취미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여기서 생계형과 취미형의 차이가 발생한다. 생계형은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시간과 자금, 인력 모든 면에서 부족함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은 생계형이든 취미형이든 누구에게나 중점사항이다. 그러나 생계형이 잡히는 것이나 굶어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할 때, 취미형은 잡히면 자신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생각으로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비용을 아끼지 않게 된다. 그리고 자금력의 차이는 곧 성공 가능성의 차이로 나타난다. 그렇다.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삶이 허무해지면, 범죄조직을 만들어 모네의 그림 한 점 훔쳐보리라.

‘당신이 제시한 스톡옵션 금액은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닙니다.’를 나는 그런 식으로 소심하게 돌려 말하고 싶었다.


오션스 일당이 돌아왔다. 생계형 범죄자였던 그들, 이제 보니 어느 사이엔가 취미형 범죄자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1편과 2편에서 거둔 수익도 한 몫 할 것이다. 부자가 되었지만 예전 습관 버리지 못해 습관+취미가 결합한 범죄자로 변신을 꾀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취미로 범죄를 저지를 만큼 여유로운 부자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훔칠 줄은 알아도 훔친 돈을 제대로 운영할 줄은 모르니, 이내 곧 생계형 범죄로 돌아올 운명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즐길 줄 안다. 빚 독촉 속에서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그들은 삶을 즐기고, 범죄를 즐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즐거운 것이다.


일당 중 한 명인 루벤(엘리엇 굴드)이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오던 뱅크(알 파치노)로부터 전 재산을 빼앗기는 일이 발생한다. 목숨이 오늘내일이라는데, 생의 의지를 소진한 루벤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 보인다. 대니(조지 클루니)와 러스티(브랜드 피트), 라인너스(맷 데이먼)를 비롯한 전 멤버가 한 마음이 되어 루벤을 대신해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그들의 계획은 뱅크의 호텔을 파산시키는 것. 이를 위해 카지노 승부를 조작해 호텔 측에게 큰 손해를 입히고, 건물이 무너질 수 있다는 소문을 퍼트리는 동시에 호텔 평가 심사관을 괴롭히는 멀티플레이 작전이 개시된다.




한편에서는 온갖 기발한 방법과 최첨단 장비가 동원되는데, 멕시코로 급파된 첩보원은 본분을 망각한 채 파업을 주동한다. 완벽해 보이는 그들, 사실 한 없이 허술하고 시끄럽기만 하다. 보통 이런 류의 범죄조직이라면, 해당 분야의 일인자들 끼리 모여 불필요한 멤버를 제거하고, 철저히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그림이다. 그런데 오션 일당은 그 선입견을 뒤집는다.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까지 포함된 탓에 자기 몫이 줄어들 것이 자명한데도 그들은 멤버 늘리기에 주저하는 법이 없다. 일의 성공이 중요하지, 자기 몫이나 내부 배신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다는 태도. 그런 쿨함에 그들의 매력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진정한 취미형 범죄의 모범을 보는 듯하다.


[오션스 11]의 ‘테리 베네딕트’와 [오션스12]의 ‘프란시스 투루어’, 그리고 [오션스 13]의 ‘윌리 뱅크’는 모두 취미형 범죄자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돈에 집착한 나머지, 스스로 생계형 범죄자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만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취미형 범죄자는 될 수 없음을 그들은 몸소 실천해 보여준다. 이쯤에서 내 목표를 수정해야겠다. 범죄조직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목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