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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 해리포터, 잔인한 시간을 넘어서다

by 늙은소 2007. 7. 16.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감독 데이빗 예이츠

출연 다니엘 래드클리프,엠마 왓슨,루퍼트 그린트

개봉 2007.07.11 미국,영국, 137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통해 성숙해진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대가로 얻은 성숙함은 지독한 외로움을 동반하고 있기에 고통 받은 자를 고립시키고 편협한 존재로 변질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현재 자신이 처한 괴로움을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처절한 고독으로부터 비롯된다. 고통 속에서 공허한 외침을 내뱉는 자들은 자신의 비명을 듣는 이가 오직 자신뿐임을 절감하며, 고통 받는 자신과 그런 자신을 지켜보는 또 하나의 자아로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고통이나 고독, 절망과 같은 감정들은 의식을 더욱 또렷하게 하여 ‘고통 받는 존재로서의 나’, ‘홀로 남겨진 존재로서의 나’, ‘절망에 빠진 나’를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결국 생각은 안으로만 파고들어 자신 외의 것을 바라보려는 시선을 거둬들이게 된다.

이런 류의 고통은 비록 부피는 작아보여도 그 밀도가 높기에, 마치 블랙홀처럼 높은 흡입력으로 모든 감정과 생각을 빨아들인다. 이성적으로 사물을 바라보지 못하고, 주위의 따스한 시선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고통의 또 다른 함정이다. 강력한 중력장을 형성하며 주변의 모든 관계들까지 파괴해버리는 그런 고통들이 삶에는 종종 나타난다.




마법학교 5학년인 해리 포터는 길지 않은 삶 전반이 고통과 외로움으로 얼룩져 있었다. 따스하게 맞이해줄 가족의 품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해리에게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가족을 대신하는 공간이었다. 지금까지 해리의 혈육들은 그에게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며 매몰차게 이야기해왔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로 각인되며 성장해온 고통이 해리에게는 이마의 상처보다 더 깊고 잔인한 상흔으로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덤블도어와 론, 헤르미온느, 시리우스 블랙 등은 가족을 대신하는 존재이며, 그가 살아갈 이유였다.


전편 [해리포터와 불의 잔]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해리에게 죽음은 한층 더 다가온 공포가 되었다. 볼트모트의 세력이 강화될수록 해리는 그와 자신이 단순한 적 이상의 관계로 얽혀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고, 그만큼 두려움에 휩싸인다. 문제는 다가온 공포의 크기만큼 해리 또한 성장하였다는 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육체적 성장과 함께 강력한 힘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며,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강대한 적과 맞서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편이 필요해진 지금, 해리는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지와 고립감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중이다. 설상가상 예언자일보와 마법부에서는 볼드모트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이를 목격한 해리와 해리의 지지자들까지 모두 거짓말로 몰아세우는 상황이다. 이것은 볼드모트와 해리의 관계가 마법사간의 라이벌일 뿐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의존적인 관계이기도 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해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해줄 존재가 바로 볼드모트이기 때문이다.


볼드모트의 부활을 믿고 싶어 하지 않는 마법부는 차관인 돌로레스 엄브릿지를 파견해, 소문의 진원지인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장악한다. 볼드모트 세력 뿐 아니라 마법부까지 적으로 돌리게 된 해리와 불사조 기사단은 궁지에 몰린다. 정치적 세계의 중심이 된 호그와트는 더 이상 신기한 마법과 장난 가득한 마법소품의 향연을 펼쳐 보이지 않는다. 축제와도 같았던 호그와트를 볼 수 없다는 점, 아이들이 갑자기 커버린 현재를 지켜봐야 하는 것은 서글픈 상실감을 안겨준다.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의 마지막에 해리는 말한다. ‘볼트모트에게 없지만 우리에게 있는 것은 바로 싸워 지켜야 할 대상’이라고. 한때는 이런 대사를 두고, 너무 빤한 게 아니냐며 비웃기도 했었다. 그런데 삶이 팍팍해서일까? 요즘은 흔한 명제들에게 세뇌당해서라도 삶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기를 희망하게 된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이제 두 편을 남겨놓고 있다. 그런데 7편으로 완결되는 ‘해리 포터’의 결말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에서는 해리 포터가 결국 죽는 게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할리우드 식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의가 승리하는 결말을 바라게 된다. 우리의 현실은 ‘그래도 정의가 승리한다.’는 명제를 아직은 좀 더 필요로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