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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에반 올마이티 : 전작과 정 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신'의 변덕스러움

by 늙은소 2007. 7. 25.

에반 올마이티

감독 톰 새디악

출연 스티브 카렐,모간 프리먼

개봉 2007.07.25 미국, 95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것이 꼬이기만 하는 한 남자에게 어느 날 신이 찾아와 전지전능한 힘을 부여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게 된 그는, 여자 친구와의 달콤한 순간을 위해 달을 끌어당기기도 하고, 강아지가 두 다리로 서서 혼자 볼일을 보게 만들기도 하며 자신의 힘을 맘껏 즐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힘의 사용은 엄청난 결과를 불러온다. 무턱대고 들어준 소원은 서로 상치되는 것이었기에 사회적 파장을 불러오고 급기야 폭동까지 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지구와 가까워진 달은 자연재해로 돌변해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킨다. 짐 캐리 주연의 [브루스 올마이티]는 제목처럼 전지전능한 신의 힘을 잠시 행사하게 된 한 남자가 삶의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다루었었다.


[브루스 올마이티]의 속편격인 [에반 올마이티]는 주인공은 바뀌었지만, 전편과의 연계성을 유지하며 시작한다.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브루스(짐 캐리)의 라이벌로 등장했던 앵커 ‘에반 백스터(스티브 카렐)’는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한다. 그는 ‘세상을 바꾸자’는 슬로건을 내세워 당선되지만,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그 내용은 빈약하기만 하다. 국회활동을 위해 가족과 함께 워싱턴으로 이사 한 에반은 이사 온 첫날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모호한 기도와 함께 잠이 든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브루스와는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전능(almighty)한 힘을 행사할 수 있었던 브루스와 달리 에반의 경우는 능력을 행사하기는커녕 힘의 지배를 받는 형태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방주를 만들라’는 신의 명령은 에반을 ‘노아’로 변신시킨다. 깎자마자 바로 자라는 수염과 백발의 긴 머리는 그를 영락없는 ‘노아’로 보이게 한다.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쌍을 이룬 동물들이 출현하고,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온갖 생명체들이 에반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다. 결국 하원의원으로서의 신분은 정직처분을 당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그의 곁을 떠난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에반은 예정된 대 홍수의 날 9월 22일 전까지 어떻게든 방주를 만들기 위해 홀로 세상과 싸우게 된다.




이쯤 되면 [브루스 올마이티]의 속편이라기보다 [산타클로스]의 후속 작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1995년 작인 [산타클로스]는 국내 제목 ‘아빠 뭐하세요’라는 시트콤으로도 잘 알려진 팀 알렌 주연의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스캇(팀 알랜)은 우연한 사고로 사망한 산타클로스의 후임자가 되는 바람에 인생이 180도 달라진다. 깎아도 계속 자라는 수염과 나날이 늘어만 가는 살들은 서서히 그를 산타클로스로 변모하도록 한다. 크리스마스 전까지 현재의 삶을 정리해야만 하는 스캇의 삶도 만만한 게 아니어서, 정신병자로 내몰린 채 아들과의 만남마저 접근금지 명령이 처해질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브루스 올마이티]와 상치되는 부분이 있다. [브루스 올마이티]가 삶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힘이 아닌 내부의 의지임을 주제로 했다면 [에반 올마이티]는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가치를 찾도록 한다. [산타 클로스]의 스캇과 [에반 올마이티]의 에반은 ‘욥’에 가까운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힘이 아닌, 시련이 부여된다. 그리고 그들은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 더 나은 사람으로 한 단계 성숙하는 경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의인으로 보기에 에반은 어딘가 부족하다. 그가 운명에 순응하고 신의 명령을 이행하는 과정은 스스로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든 신의 장난 때문이었다. 이것은 영화가 전달하려는 주제 없이, 몇 가지 재미있을 만한 요소를 억지로 끼워 넣기 위해 제작되었음을 유추하게 한다. 깎았던 수염이 다시 자라고, 입었던 옷이 벗겨지는 것 같은 에피소드를 위해 ‘신의 뜻’이라는 거대한 단어를 불러온 것이다.




[브루스 올마이티]가 적극적인 태도로 삶을 바라본다면, [에반 올마이티]는 다분히 수동적인 자세로 삶을 대한다. 가족영화를 표방하는 상당수의 영화들 역시 보수적이며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곤 한다. 영화는 환경 보호를 천명하지만 영화 속 동물은 야생성을 잃은 채, 방주제작을 도와주는 말 잘 듣는 동물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이래서야 환경보호는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인간에게 유익한 동물들만 살리자’는 외침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진지한 질문은 하나도 없이, 재미있으면 그만인 영화로 끝난 [에반 올마이티]. 제목에서 ‘올마이티’를 삭제했어야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