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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 내 청춘은 아름답지 않았다

by 늙은소 2007. 8. 16.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감독 신조 타케히코

출연 미야자키 아오이,타마키 히로시

개봉 2007.08.15 일본, 116분

※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청춘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지만, 내게 청춘은 구차하고 얼굴 붉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스무 살, 나는 무력감과 외로움에 허우적거리며, 빨리 시간이 지나가버리기만을 소망하였다. 사랑은 절실했다. 20년 동안 보상받지 못한 가족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였던 것이 그때였고, 부모는 사랑을 베푸는 존재라는 말이 거짓임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역시 그 무렵이었다.

홀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나이. 나를 좋아해줄 사람이 필요하였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야만 자신을 긍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무 살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을 망각하게 하는 열정도, 기쁨에 들뜬 로맨스도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 그런 의문을 사랑으로 증명 받고 싶을 뿐이었다. 아무도 지켜봐주지 않은 삶은 너무 외롭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동문회 선배를 좋아하면서도 소개팅에 꾸준히 나가고, 서클 선배를 좋아하면서도 예쁘장하게 생긴 신입 동기에게 눈길이 갔다. 상대에게 ‘너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야’라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나를 좋아해줄 사람이지,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호감과 사랑을 혼동하던 나이, 그래서 사랑을 찾아 방황할 수밖에 없던 나이. 나는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감정의 방향을 쉽게 전환하였고, 그만큼의 속도로 쉽게 잊었다. 영원을 약속하고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젊음은 질투할 만큼 눈부시지만 한편으로는 거짓된 감정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마저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청춘 아니었던가.


시즈루(미야자키 아오이)와 마코토(타마키 히로시)는 20살, 대학 입학식 날 건널목에서 우연히 만난다. 피부염증 때문에 어려서부터 약을 달고 살아온 마코토는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날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는 연애는커녕 친구조차 제대로 사귀지 못한 채 스무 살이 되었다. 반면 시즈루는 남보다 성장이 늦은 탓에 중학생 같은 외모와 행동으로 괴짜 소리는 듣는다. 그녀 역시 또래들과 어울리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시즈루는 마코토를 만난 순간부터 그에게 반하고 만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그를 따라다니며 시즈루는 마코토와 자신만의 추억을 만들고, 자연스럽게 학교 옆 숲은 두 사람만의 공간이 된다. 그러나 마코토의 마음에는 미즈키가 자리잡고 있었다. 친절하고 세련된 여성인 미즈키를 향한 마코토의 시선을 바라보며, 시즈루는 성장하지 않는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시즈루가 성장하기 시작했을 때, 마코토가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시즈루는 사라진다.


복숭아맛 이온음료를 마신 것 같은 싱그러움이 영화 전체를 감싸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절대적인 사랑인양 정의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라진 시즈루만을 기다리며 그녀와 함께 하던 집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그건 사랑이었어’를 강조할 건 아니라는 말이다. 시즈루는 ‘어른이 되면 죽는 병’에 걸렸다고 이야기한다. 성장을 멈춘 채 육체적 생명을 연장할 것이냐, 성장하는 대신 생명이 단축되는 것을 감수할 것이냐. 그녀가 처한 모순은 이것이다. 이것은 성장해야만 하는 우리에게도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질문이다. 막중한 책임감이 뒤따름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꾸릴 것이냐, 사회의 치열함을 온 몸으로 부대껴야 함에도 어른이 될 것이냐. 시즈루처럼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는 아닐지라도,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임에 분명하다. 마코토에게 있어서도 시즈루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잃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의미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마코토는 시즈루와 함께한 시간을 통해 진로를 결정하고, 비로소 어른으로의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성장한 시즈루의 사진 때문이 아니라, 성장하지 않은 채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남으로써 왈칵 눈물을 쏟을 수도 있는 게 지나간 청춘의 힘이 아닌가.


내 청춘은 아름답지 않았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외로웠으며, 매순간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그런 결핍이 그리워질 때, 청춘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가 결국은 찾아온다. 그때가 되면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확인하며 조금은 서글퍼지는 것이다.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는 사랑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청춘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한 번 돌아보자. 스무 살의 나는 어떠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