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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어트 맨: 그를 그곳에 가둔 것은 누구인가

by 늙은소 2009. 1. 8.

콰이어트 맨
감독 프랭크 A. 카펠로 (2007 / 미국)
출연 크리스찬 슬레이터, 엘리샤 커스버트, 윌리암 H. 메이시, 존 걸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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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몰개성의 파티션에 갇혀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 밥 맥코넬
(크리스찬 슬레이터). 그는 책상 서랍에 권총을 넣어두고 분노가 치솟을 때마다 총알을 장전하며 사람들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상상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6발의 총알을 누구에게 사용할 지 목록을 읊는 그는, 매번 기회를 노리며 파티션 너머를 바라보지만 이를 실행하지 못한 채 퇴근하는 하루를 반복한다.

극에 달한 분노로 또 다시 총을 꺼내든 밥은 실탄을 장전하던 중, 예상치 못한 총성을 듣게 된다. 동료였던 콜맨이 자신보다 먼저 동료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 마침 밥의 손에는 장전된 총이 있었으며, 바닥에는 자신을 향해 미소를 보여주었던 유일한 존재인 바네사(엘리샤 커스버트)가 쓰러져 있다. 밥은 콜맨을 향해 총을 발사함으로써 바네사의 생명을 구하고 영웅의 이미지를 얻게 된다. 평소 자신을 무시하던 동료들은 그와 친해지지 못해 안달을 하고, 회사의 대표는 그에게 이사직을 제안하며 고급 승용차를 내주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밥은 이제 살인충동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인가?

 

이 사건으로 밥의 인생은 모든 것이 달라진다. 자신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던 상사는 밥의 승진으로 관계가 역전되고, 냉대하던 이웃들은 자신의 파티에 그를 초대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바네사와의 로맨스까지 시작되자 그의 인생은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이기만 한다.

표면적으로 밥에게 더 이상 사람들을 죽여야 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승진을 했고 좋은 차와 여자가 생겼으며 사람들의 관심까지 얻게 되었다. 마치 밥을 달래기라고 하려는 듯 사회는 한마음이 되어 밥에게 온갖 보상을 제공해 그의 살인충동을 억제하려 한다. 그러나 행운에 대한 불안함이 내부에 스며들기 무섭게, 애써 잡은 균형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밥은 타인에 대한 증오가 아닌 자신에 대한 환멸과 절망으로 총을 장전한다



[콰이어트맨]은 총기난사를 실행하려던 남자의 인생에 개입하여, 그의 불만을 해결해줌으로써 살인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가에 대해 실험하는 영화이다. 예정된 살인자인 에게 여러 종류의 당근을 제공한 뒤,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다. 과연 밥은 사회를 향한 증오심을 거둘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실험은 실패해, 밥은 주어진 기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비극적인 선택을 취하고 만다. 마치 애초에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라는 듯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리가 밥으로부터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의 손에 죽기 전에 을 먼저 죽이는 것.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잔혹한 현실은 살인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밥이 왜 사람들을 죽이고자 했는지, 그 분노의 근원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살인은 폭력행위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방식 중 하나이다
. 범죄에 있어 살인은 생면부지의 타인보다 주변인을 향하는 경우가 많으며 상당수가 지극히 감정적인 결과물로 발생한다. 그러나 빈번하게 발생하는 총기난사 사건이나 묻지마 살인은 특정인에 대한 원한보다는 사회 전체에 대한 증오심이 분노로 표출되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범죄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폭력의 방향성이 불특정 다수를 향하고 있으며, 살인자가 자신의 안위를 구하지 않고 범죄행위를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자신의 인생까지 함께 파괴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총기난사’, ‘묻지마 살인’, 혹은 증오범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같은 살인 행위에는 공격적 형태의 자살이 중첩되어 있다. 그의 파괴목록은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밥 맥코넬은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하는 일반적인 살인자들과는 조금 다른 인물이다. 그는 죽어선 안될 사람과 죽어 마땅한 사람을 분리해 생각한다. 그가 매번 총을 장전하면서도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런 차이 때문인지 모른다. 키우는 어항 속의 금붕어와 대화를 나누는 밥 맥코넬은 성냥에 그림을 그리고 매일 똑 같은 사과주스를 마시는 인물이다. 바네사와 연애를 시작하며 밥은 창 밖의 새와 대화를 시작하였고 새로운 음식을 만들었으며, 옥상에서 날아가는 비행기를 바라보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직장 내의 승진과 고급스러운 차가 아니라 바로 그 사각의 세계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를 그곳에 가둔 것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