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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데어 윌 비 블러드: 검은 피를 찾아 나선, 오일광 시대의 고독

by 늙은소 2009. 1. 16.

데어 윌 비 블러드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2007 / 미국)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폴 다노, 케빈 J. 오코너, 시아란 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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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다니엘 데이-루이스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작품상을 수상했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작품성을 갖추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놓고 평론가들은 현대사회의 자본주의적 폐해를 말하는가 하면, 부시 정권 하의 미국사회를 빗대기도 한다.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여러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 것이며, 그만큼 풍부한 상징들로 뒤덮여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 많은 이들, 심지어 이 영화를 홍보하는 배급사에서도 영화의 주인공인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루이스)를 탐욕에 눈이 먼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부’를 위한 수단으로 석유를 대하지 않는다. 그에게 석유는 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었다. 발견하기 힘든 대상을 찾아, 그것을 자신의 세계 바깥으로 이끌어 내는 작업. 검은 색 액체가 땅 위로 뿜어져 나올 때 느끼는 쾌감.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는 점에서 석유는 검은 색 피이며, 다니엘 플레인뷰는 생명의 원천을 찾아 이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인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철저히 종교적 상징만으로 이해한다면,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 이어지는 긴 역사를 압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창세기 1장, 3번째 문장은 이와 같다. ‘신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여기에 영화는 하나의 문장을 추가한다. 'There will be blood'



영화는 어두운 광산 지하에서 벽을 두드리는 다니엘 플레인뷰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세상은 아직 빛이 창조되지 않은 듯 어둡기만 하고, 언어 역시 존재하지 않아 영화는 10여 분 간 한 마디의 대사 없이 진행된다. 들리는 소리는 벽을 내리칠 때 나는 둔탁한 파열음과, 낯선 음파들이 간섭 현상을 일으키며 생성하는 맥놀이 뿐이다. 세상은 어둡고 그는 혼자이며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광산에서 홀로 망치질을 하던 사내는 우연히 석유를 발견하고, 3년 뒤인 1989년 마침내 석유 채굴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다니엘 플레인뷰의 독백이 삽입되며, 비로소 ‘언어’가 영화에 등장하게 된다.

다시 몇 년 뒤 1911년, 석유 시추업자로 성공을 거둔 플레인뷰는 우연히 얻게 된 갓난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키우며, 유전개발을 위해 미국 각지를 오간다. 석유 개발 문제는 당시 ‘Black Gold Rush'로 불릴 정도여서 미국 남부지역은 각종 사기꾼과 부동산 투기로 들끓고 있었다. 다니엘은 아들 H.W를 앞세워 ‘가족중심주의’를 표방하며 사람들을 설득했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그들의 토지를 사들이며 사업을 확장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헐값에 석유가 묻힌 땅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며 폴 선데이(폴 다노)가 찾아온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폴이 알려준 지역을 찾아가 석유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땅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폴의 쌍둥이 동생인 일라이(폴 다노)는 땅을 파는 조건으로 지역 교회에 거금을 헌금할 것을 요구하고, 다니엘 플레인뷰는 헌금을 약속하며 계약을 성사시킨다.

그러나 다니엘은 석유시추 개시행사장에서 기도를 하게 해주겠다던 일라이와의 약속을 배신한 채 자신의 입으로 직접 기도의 말을 선언한다. 여기서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일라이에게 있어 다니엘이 저지른 것은 신성모독에 가까운 행위였다. 제3계시교(Church of the Third Revelation) 교회를 이끌고 있던 일라이 선데이는 광적인 몸짓으로 악을 물리치는 행위를 시연함으로써, 마을 주민들을 영적으로 지도하는 존재였고, 일라이의 입장에서 기도는 그에게만 허용되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 자리를 가로챔으로써 다니엘은 일라이의 지위와 대립하는 존재로 부상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이 바로 일라이가 이끄는 교회의 이름이다. 세 번째 계시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 교회의 이름은 ‘제3계시교’이다. 계시는 ‘자신을 현시하다, 즉 아포칼립스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계시록, 특히 요한계시록으로 대표된다. 세계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는 요한계시록에는 세상이 멸망하는 과정을 7개의 단계로 나누어 묘사한다. 이 중 세 번째 계시는 ’검은 색 말‘와 함께 찾아오며 흉년이 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실제 선데이의 목장은 곡식이 자라지 않아 빵을 구울 수 없는 지역이었고, 사람들은 굶주림과 갈증(지하수에 소금기가 많아 마시지 못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한 묵시록에서 7번째 계시의 7번째 나팔의 3번째 대접은 강과 물이 피로 변해 사람들이 그 피를 마시게 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일라이 선데이(7번째 날-Sunday)는 ‘3번째 계시’교회를 이끌고, 다니엘은 ‘검은 피(석유)’를 땅으로부터 뿜어내는 존재로 그와 대립하고 있다. 계시록의 상징으로 해석하게 되면, 일라이에게 있어 다니엘과 석유는 세계의 종말을 상징한다. 그러나 역으로 영화는 일라이의 교회를 오히려 어둡게 표현함으로써 선과 악의 대립을 배반하고, 경계의 모호성을 강조한다.

다니엘은 석유 시추에 성공하지만 약속한 헌금을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일라이를 비롯 마을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들인 H.W가 청력을 잃고 만다. 다니엘은 자신의 아들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아들을 떠나보내고 대신 자신의 이복동생이라는 헨리를 맞아들인다. 이제 다니엘은 헨리를 통해 대화를 시도한다. 다니엘은 늘 누군가 자신의 일부를 짊어질 상대를 찾아 헤매었다. 청력을 잃은 아들을 대신할 존재로 헨리가 선택되었지만, 헨리는 결국 그의 동생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만다. 낙담한 다니엘은 헨리를 죽인 뒤, 다시 아들을 데려와 대화를 시도하지만 H.W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27년, 술에 취해 혼자 대 저택에 살고 있는 다니엘 플레인뷰에게 아들 H.W가 찾아와 결별을 선언한다. 마침에 철저하게 혼자가 된 다니엘은 15년 만에 만난 일라이를 살해한 뒤, ‘I'm finished’라 말하며 영화의 끝을 맺는다.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소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반 10여 분 간 들리는 소리라고는 파장이 다른 두 소리가 서로 만났다가 멀어지며 만들어내는 울림뿐이었다. 두 개의 소리는 서로 닮아있어서 주기적으로 간섭하고 상쇄하며 독특한 울림을 형성하는데, 이것은 두 개의 대립하는 개념이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의지하는 것을 상징한다. 

영화는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의 과정을 한 사람의 일생과 석유개발기 미국남부의 역사로 대신 설명한다. 소리와 빛이 없는 세상의 다음, 한 사내가 아들을 만들고, 형제를 죽이고 언어의 단절을 겪은 끝에 자신을 부정하고 마침내 아들로부터 자기 자신이 부정당하는 과정. 

다니엘 플레인뷰는 단순히 탐욕스러운 인간이아니라, ‘검은 피’를 지상으로 뿜어 올리는 행위 자체에 탐닉한 인물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아들인 H.W 역시 석유 시추에 매료되어 있었으며, 일라이는 사람들의 내부에 도사린 악을 끄집어 내 그것을 바깥으로 내던지는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다니엘과 동일선상에 놓인다. 각각의 인물들은 대립하고 있으나 한편 서로를 닮아 있다. 마치 닮은 두 개의 소리가 만들어내는 상쇄와 간섭의 구조처럼.
결국 극단적인 대립 관계에 놓인 인물들은, 오히려 어느 누구보다 서로 닮아있으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때로는 상대를 통해서 자기 존재의 의의를 찾게 되기도 한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모순을 하나의 합리로 만들어버리는 존재. 석유시추에는 그런 힘이 녹아있다. 석유를 찾아내 현시(Revelation)하는 행위가 바로 ‘시추’작업이며, 그것이 다니엘이 일평생 집착한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끊임없는 고독은 다니엘 플레인뷰를 갉아먹고 그 때문에 그는 거짓으로라고 아들, 혹은 동생 심지어 자신과 대립할 대상을 필요로 해왔다. 친아들이 아닌 H.W를 아들로 받아들이고, 친동생이 아닌 헨리와 형제 관계를 맺고, 거짓된 종교인이었던 일라이와 대립하였던 그는 그만큼 절박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아버지를 부정하였고, 헨리는 동생이 아니었으며, 일라이는 거짓 선교자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만다. 그들의 거짓으로 인해 다니엘의 고독은 치유될 수 없는 것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의 고독에 대한 분노는 검은 피를 땅 위에 흩뿌린 다음에도 치유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