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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잠수종과 나비 : 하나의 '눈'으로 지연된 죽음

by 늙은소 2009. 1. 16.

잠수종과 나비
감독 줄리앙 슈나벨 (2008 / 프랑스, 미국)
출연 마티유 아말릭, 엠마누엘 자이그너, 마리-조제 크로즈, 히암 압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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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프랑스판 엘르의 편집장이던 '장 도미니크 보뷔'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2주간 혼수상태에 빠진다. 다시 의식을 회복하며 깨어나지만 그가 인식할 수 있는 신체 기관은 왼쪽 눈 하나 뿐이다. 몸의 기관들은 더 이상 중추 신경과 연결되지 못하며, 단절된 기관은 이제 '벽'이 되어 그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

카메라는 그의 왼쪽 눈이 되어 '장 도'-장 도미니크의 애칭:존 도(John Doe)와 유사한 발음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의 불완전한 시선을 대체한다. 힘들게 뜬 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가다듬어 형체를 구체화 시키고, 좁아진 시야각 안에서 사물들은 어긋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 영화는 철저한 1인칭 시점으로, 단 하나의 눈을 지닌 카메라가, 하나의 눈 외의 무엇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의 시선을 대리하도록 하고 있다. 몰입도는 때로 극대화 되어 그가 다른 하나의 눈을 봉쇄당할 때 경험했을 소름끼친 공포를 공유하도록 유도하며, 흐려지는 화면을 보며 그가 흘릴 눈물을 짐작하게 함으로써 슬픔을 절감하게 만든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극단적인 1인칭 시점은 오히려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들기도 한다.

영화의 프레임은 종종 프레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할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프레임은 특정한 대상을 화면에 담기 위해 기획되기도 하며, 동시에 특정한 대상을 화면에 담지 않기 위한 제한선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잠수종과 나비'에서 카메라는 주인공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하나 남은 그의 눈이 되어 주변을 포착한다. 보통의 영화에서 1인칭 시점은 관객이 카메라의 존재 여부를 떠올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관객은 화면 속 시점의 주인공인 인물과 완벽히 일치되어, 흡사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끊임없이 '카메라'를 인식하게 한다. 장 도의 눈, 그의 눈커플이 만들어내는 곡선의 어두움을. 
결국 카메라가 대리하는 것은 장 도가 아니라 장 도에게 유일하게 남은 기관일 뿐이다. 여기에서 카메라와 '장 도미니크', '장 도미니크'와 관객의 거리가 발생한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는 사고로 불운한 상황에 처한 인물의 입장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철저하게 그의 시선으로 그가 처한 현실을 체험하도록 제작된 영화로 여겨진다. 그러나 카메라는 때로 그의 시야로부터 벗어나 하늘 높이 비상하기도 하며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는가 하면 몽환의 세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 때 카메라의 시점은 신체 기관으로서의 눈이 아닌, 심상像을 바라보는 눈이 된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인 '장 도미니크 보뷔'의 책을 기초로 하고 있다.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한 후 15개월 동안의 삶에서 자신이 겪은 상황과 과거에 대한 기억들로 구성된 책은 상상력이 더해져 때로는 화사하고 때로는 처연한 슬픔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활자화 된 글자든 그가 눈꺼풀을 깜박이며 힘들게 표현한 언어든, 의식은 외부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변형되기도 하고 일정한 재단을 거치기도 한다. 또한 이것은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형을 통해 사고는 다채로워지고 풍요로움의 가능성을 얻게 된다. 이것은 '장 도미니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눈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것에 이야기를 더하고, 그것에 추상적인 이미지를 더해 역으로 상대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그 공간을 유영하기도 한다. - 거울을 보는 사람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동시에 거울 속의 내가 되어 거울을 보는 나를 다시 바라보는 이중의 시선을 취할 수도 있다. 이것은 실제의 상과 심상이 혼재되어 있는 순간이며, 매 순간 우리는 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을 뒤섞은 채 살아가고있다. - 그래서 이 영화는 일정 부분 환상성을 안고 있다. 화면은 그의 망막에 맺힌 영상의 리얼리티에만 집착하지 않고 그가 상상하는 것과 현실을 뒤섞는다. 그 때문에 이 영화는 온전히 사실성에만 국한되지 않고 좀 더 자유로운 왜곡을 감행한다. 장 도미니크가 인식하는 현실은 객관적 시선으로 본 현실이 아니라 그가 파악하는 한도 내에서의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카메라가 3인칭 시점으로 장 도미니크를 외부의 눈으로 촬영할 때, 그가 속한 공간은 제 3자의 눈을 통해 본 공간일 수도 있으며 동시에 장 도미니크가 유추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시선은 '병원 복도'에서 교차한다.


장 도미니크가 자신의 얼굴을 희미하게나마 처음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장소는 바로 병원 복도이다. 여기서 그는 금속성 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흉측하게 변모한 진실을 맞딱트린다. 바로 그 장소, 극명한 현실을 마주하였던 병원의 복도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가 되고, 자신이 사랑하였던 연인과 재회를 꿈꾸는 공간이며 몸이 치유되는 것을 상상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때 시선은 장 도미니크의 눈이 되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다가 연인의 얼굴을 마주보며 교차한다. 그렇게 뒤돌아선 시선은 장 도미니크로부터 벗어나 춤을 추는 댄서를 바라보는 관객의 눈이 되고, 다시 복도를 따라 다가오는 장 도미니크를 마주보는 눈으로 바뀌고 만다. 장 도의 눈이었던 카메라가 그로부터 벗어나, 장 도를 마주보는 시선으로 변모한 것.
'나'였다가 '그'로 변한 시선이, 다시 '너'로 뒤바뀌는 곳.



영화에는 지난 시간에 대한 추억과 오래된 사진이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그는 실재 했던 과거를 되돌아 보는 것 뿐 아니라 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변형을 가하기도 한다. 아내가 돌아가는 기차역의 플랫폼에 자신의 과거를 합성하여 기억을 편집하는 것 역시 그와 유사한 맥락이다. 또한 그가 사고 전 기획하던 책의 내용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새로운 구도로 변형하는 것이었다. 

그가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은 철저한 현실인식이 아니라, 일정 정도의 환상성 안에서 현실을 왜곡시키고 그로부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행위였다. 그가 몸담았던 잡지사 역시 패션이라는 대상을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가공해 촬영하고, 그러한 이미지들을 책으로 엮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영화 [잠수종과 나비]는 장애를 겪은 한 인물의 리얼리티에만 집중하지 않고, 장 도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과 비현실을 뒤섞어 '전기영화'로서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 영화 속 
치료 담당자들은 지나치게 아름다우며, 치료사 '마리'에 의해 억지로 만나게 된 교회의 신부는 자신이 예전에 만난 관광지의 상점 주인과 동일인으로 나온다 - 이는 '현실'과 '비현실'을 뒤섞은 과정에서 나온 결과이다. 


그는 자신이 잠수종에 갇혀 있다고 이야기한다. 산소 탱크를 지니고 있는 현대의 잠수복과 달리, 잠수종은 연결된 줄을 통해 공기를 공급받아야 하는 의존적 장비이다. 여기서 탁한 물은 심해深海, 혹은 양수의 이미지가 되고, 산소가 들어오는 줄은 탯줄이 된다. 그리고 지금 그 줄은 하나 남은 왼쪽 눈이 되어 그가 세상과 소통하도록 하고 있다. 
 

책을 완성한 그는 마침내 잠수종을 버려둔 채 자신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