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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디파이언스 :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by 늙은소 2009. 1. 19.
디파이언스
감독 에드워드 즈윅 (2008 / 미국)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리브 슈라이버, 제이미 벨, 조지 맥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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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폴란드와 러시아, 독일의 틈바구니에서 몇 차례에 걸친 침략을 경험한 벨로루시는 러시아의 공산당 혁명과 독일의 나치지배를 온몸의 상처로 기록한 역사를 안고 있다. 1941, 나치의 침공으로 벨로루시에 거주하던 대부분의 유대인은 수용소에 끌려가 그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작은 촌락에서 농사를 짓던 비엘스키 집안 역시 다르지 않아, 나치와 경찰의 손에 몰살될 위기에 처한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아사엘(제이미 벨)은 형 투비아(다니엘 크레이그)와 주스(리브 슈라이버)와 함께 인근 숲 속에서 은거하는 삶을 시작한다.

 

비엘스키 형제가 숨어 지내던 숲에 점차 유태인들이 몰려들자 투비아는 자연스럽게 이들을 이끄는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부모를 밀고한 경찰과 나치를 향해 복수심을 키우던 투비아와 주스는 마을에 내려가 보복을 감행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동료를 잃게 된다. 이 일을 통해 투비아는 무모한 복수보다는 당장의 삶을 더욱 중시하는 쪽으로 선회하게 되며, 주스는 그런 투비아와 충돌한 끝에 러시아군에 합류해 나치에 대항하기로 결정한다.



 

[디파이언스]2차 세계대전 중 유태인이 순종적인 희생자의 길을 걷기만 하지 않았음을 강변하는 영화이다. 실존 인물인 비엘스키 형제는 나치의 인종말살 정책 앞에 서로 다른 두 가지 선택을 제시한다. 자신의 민족을 이끌고 어떻게든 살아남는 쪽을 택한 투비아와 러시아군과 연합하여 나치와 싸울 것을 택한 주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때 어느 누가 더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답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살아남은 자와 적을 죽인 자 모두에게 그 책임을 묻기에는 전쟁과 폭력의 역사가 너무 무거운 죄를 짊어진 탓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는 것은 불편하다. [디파이언스]는 거듭 유태인이 순한 양처럼 희생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자 노력한다. 우리는 그렇게 착하고 호락호락한 민족이 아니라는 그들의 강변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이스라엘의 폭격에 스러지는 팔레스타인의 외침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귀에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기도문은 그로 인해 의미심장한 무게로 다가온다. ‘이제 유태인이 아닌 다른 민족을 택하소서



 

어쩌면 유태인들이 주스처럼 강경하게 자신의 적을 향해 총을 겨누고, 즉각적인 복수를 감행하는 길을 택하였다면 이스라엘의 현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였을 때 우리는,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떤 행위도 용납될 수 있다는 면죄부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은 자는 누적된 죄의식을(살아남았다는) 가해자가 아닌 또 다른 제 3자에게 떠넘기는 경향이 있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동료들이 하나 둘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지도자의 죄책감은, 나치를 향한 복수심으로 전환되는 대신 새로운 땅에 대한 집착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 결과 살기 위해서라면 또 다른 민족을 추방할 수 있다는 논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살아남는 것외에는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의 잔혹함은, 그러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모든 행동의 정당성을 부여할 권리를 제공한다. 이들은 그 과정에서 윤리적 판단의 경계를 스스로 파괴해버리는데, 문제는 잔혹한 현실이 끝난 이후에도 그 경계를 바로 세우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결과물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