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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예스맨 : '예스'만으로는 행복해지지 않는 세상과의 부조화

by 늙은소 2009. 2. 1.
예스맨
감독 페이튼 리드 (2008 / 미국)
출연 짐 캐리, 주이 디샤넬, 대니 마스터슨, 샤샤 알렉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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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포함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대형 서점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한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있다. 표지에는 다소 느끼하게 생긴 백인 남성이 자신감에 찬 표정으로 웃고 있었고, 어찌나 제목을 잘 지었는지 읽어보지 않아도 대충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유형의 책에 닭살 돋는 성품이라 직접 돈을 지불하고 살 계획은 '일절'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 권이 생기고 말았다. 이사를 하며 대출을 받아야 했는데, 성과 하나 올려 기분 좋아진 은행 직원이 빨래 세제와 함께 이 책을 끼워 준 것. 다달이 은행 이자 갚으며 채무자로 전락한 것도 서러운데 뭘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열불 나는 일이지만 어쩌겠나.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부동산에 전 국민이 목을 매는 마당에 전셋값을 마련하려면 빚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을.

 

종종 궁금해진다. ‘긍정적인 마인드는 과연 힘이 되는 것일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사실은 나에게 맞지 않아 힘든 것인지, 혹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꾸만 회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는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엉뚱한 곳에서 우물을 파겠다고 삽질을 하는 중인지 모르는 상황인데, 어떻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할 수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뚝심 하나로 인생을 일궈 온 사람들을 접하면 긍정적인 마인드와 후회하지 않는 삶이 그들의 성공에 큰 밑거름이 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물론 긍정적인 사람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운 나쁘면 콘크리트 바닥인 줄도 모른 채 긍정적인 마인드만 믿고 삽질하다 인생 망칠 수도 있는 것. 궁금하다. 나는 지금 올바른 지점을 파고 있는 것일까?



 

은행에서 대출업무를 담당하는 칼 엘런(짐 캐리)은 삶의 모든 것이 회의적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전처가 애인과 행복하게 산다는 사실 만으로도 괴로운데 친구들은 그런 그를 어떻게든 즐겁게 해주겠다며 끊임없이 불러내 귀찮게 한다. 만사 짜증만 나는 그에게 어느 날 예전 직장 동료가 찾아와 예스 강연'에 참여해 볼 것을 권유한다. ‘No’라는 대답 대신 ‘Yes’라 답할 때마다 마음가짐이 달라지며 인생까지 함께 바뀔 수 있다는 강사의 주장에, 자의 반 타의 반 ‘Yes’서약을 하고 만 칼. 시험 삼아 ‘Yes’로 응답한 칼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기 시작하며 점차 그는 ‘Yes’를 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론자처럼 ‘Yes’라는 한 마디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귀찮은 업무 요청에 ‘yes’를 답하면 상사는 승진대상자로 그를 추천해 주고, 노숙자를 태워준 대가로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여자에게 키스를 받게 된다. 인생의 모든 면이 180도 달라지자 칼은 no를 말하지 못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결국 앨리슨(주이 디샤넬)과 시작한 새로운 사랑에도 yes로만 일관하게 된다. 칼의 이러한 강박관념을 알게 된 앨리슨은 칼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동과 대답이 진심이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뒤늦은 후회 속에도 no를 차마 말하지 못하는 칼은 yes서약이 사실은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일 뿐, 신비로운 주술처럼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님을 깨닫고 연인을 찾아가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밝힌다.



 

[예스맨]은 '지극히' 긍정적인 영화이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예스라는 말을 반복하면 모든 일이 해결되고 사랑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런가. ‘yes’를 말하는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이용하는 것이 숨겨진 규칙이라도 되는지, 온통 이용당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로 세상은 넘쳐난다. ‘yes’를 순수하게 ‘yes’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여야 예스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영화는 과거에 보여주었던 짐 캐리의 이미지를 복원하려 애를 쓴다. 짐 캐리는 [에이스 벤츄라]를 시작으로 [덤 앤 더머], [마스크]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최고의 코미디 배우 자리에 오른다. 그가 보여주는 코믹 연기는 다소의 기괴함을 동반하는데, 바보 캐릭터를 연기할 때조차 도착적인 측면이 가미됨으로써 정신병적인 인물이 창조되곤 하였다. 이런 측면이 다소 약화된 대신 그 빈 자리에 휴머니즘을 추가한 영화가 [라이어 라이어]이고, 여기에 조금 더 진지한 질문을 더한 것이 [트루먼 쇼]이다. 짐 캐리의 이러한 특성은 낙관적인 삶 속에서도 우울함을 감지하는 미국 내 소시민의 정서를 반영함으로써 큰 지지를 얻곤 하였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정신질환은 지식인이거나 소위 예민한 감각과 감수성을 지닌 이들의 전유물인 양 묘사되곤 한다. 그들은 자신의 우울함과 균형을 상실한 정신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능하였고, 그러한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소시민은 심리적 불안정을 언어로 표현하기 앞서 특이한 행동으로 가시화하는 경향이 있다. 식품에 독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여 직접 만들지 않은 음식은 먹지 못한다거나, 모든 물건에 세균이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늘 장갑을 낀 채 생활하는 등 자신의 이상징후를 특이 행동으로 전달하는 소시민적 정신질환을 짐 캐리는 탁월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예스맨] 역시 그러한 짐 캐리의 능력을
십분 활용한 영화에 속한다. 계보로 따지자면 [라이어라이어]에 가깝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짐 캐리가 보여주는 표정 연기와 우스꽝스러운 행동에만 기댈 뿐, 그가 지니고 있는 근원적인 불안함에 접근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로 인해 짐 캐리는 동일한 이미지로 소비되기만 할 뿐이어서 오히려 여주인공인 주이 디샤넬만이 더 빛을 발하는 느낌이다.


* '긍정의 힘'이라는 책은 펼쳐보지도 않고, 달라는 사람에게 줘버렸음. 정말 저런 책 보라고 주는 사람 너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