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된 시간과 흐르는 목소리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한 남자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세계대전의 파괴가시작되기 이전그에게마지막 남은기억 속에는,흑백의 강한 대비를 이루며쓰러지는남자와 그것을 지켜보는 여자가 있다. 뒤이어 시작될 세상의 파괴는 파편화되는 폭발로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형태가 부서지는종말은 자신의 부피를 유지하지 못하는 파괴이기에 허무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면적을 유지한 채 곡선을 그리며 쓰러지는 생명은 무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는 과거로 돌아간다.그리고 그곳에서그녀를 만난다.
동물원과 공원을 산책하며 두 사람은 세계가 파괴된 이후 다시는 볼 수 없게될 생명의 활기찬 움직임과 빛의 산란을 향유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 주위를 햇빛이 감싸고 있지만, 흑백의 화면은 정지되어 있고 모노톤의 풍경은 부서질 듯 연약하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몇 분에서 몇 초..씩 끓어진 화면의 미세한 변화는 그것이 하나의 움직임일 뿐 아니라, 시선의 다가감이자 감정의 다가섬임을 드러낸다.
감정의 다가섬은 상대의 시간과 움직임을 보다 작은 파편으로 나누게 만든다. 미묘한 변화들, 작은 움직임.. 그녀가 웃으며 이야기할 때 빛이 어떠한 그림자를 만들었는지.. 모든 기억이 선명해지고, 세밀해진다. 그가 기억하는, 그리고 집착하는 과거는 그녀로 인해 정교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파리는 파괴되었고, 그는 또 다시 그녀 앞에서 쓰러진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 광경을 목격하는 시선을 취하지 않는다. 지금 그가 바라보는 것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져내리는 자신의 몸과, 점점 가까워지는 바닥, 그러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 그리고 파괴될 도시의 남은 잔영이다.
* La Jetee -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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