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본 [Conan, The Barbarian]
원시성과 주술적인 것이혼합된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생이던 80년대 중반쯤이다. 아이인 내가 봐서는 안될 것 같은 독특한 분위기. 금지된.. 이단의 종교적 행위를 몰래 훔쳐보는 듯한 죄의식이 영화의 이야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 날의 묘한 감정이 지금도 선명하다.
영화는 철의 신비로움을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여기서 철은 단순히 새로운 금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검, 힘, 권력 그리고'광기어린 폭력을 넘어서는 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뒤이어 살육이 화면을 장악한다. 채 다듬어지지 않은 칼날은 망치의 둔탁한 공격에 쓰러지고, 날카로운 들개의 이빨에 찢겨진다. 아이인 코난은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을 숨어서 지켜본다. 하얀 눈 사이에 숨어있던 코난은 어머니의 손에 의지한 채 적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오른손으로는 아들의 손을, 왼손으로는 칼을 쥔 어머니의 모습이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런데.. 이 영화에 이렇게 멋진 장면이 있었다는 말인가? 이 배우는 누구지? 대사 한 마디 없이, 약 5분가량 출연하는 것이 고작인 코난의 어머니가 상당한 미모와 연기력을 선보인다. 칼을 내려놓기까지의 표정변화와 그녀의 몸이 베어지는 장면에 대한 연출력(코난의 얼굴 옆으로 떨어져내리는 금발머리).. 모든 것이 훌륭하다.
그리고 끝이다. 아놀드가 등장하는 이후, 영화는 3, 4등급 아래로 추락해버리고 만다. 감독이 초반만 찍고 바뀐 게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생각하지 못한 재발견이다.
'Conan, The Barbarian'- 아놀드가등장하기 전까지는 괜찮은 영화였다는.. - -;
2.
일요일 밤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악몽에 시달린다. 채널 cgv 에서 방영하는 'Inside'를 시청하다 잠들기 때문. (새벽 2~4시 사이인 방송을 보기 때문에 월요일 출근이 매우 괴롭게 된다 ㅠㅠ)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데 재법 재능이 있는 제작진들이 만든 이 드라마는 묘하게 몰입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어제 본 에피소드. 유산을 한 임산부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다른 임산부의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가는 이야기. - -;; 사건 해결을 위해 FBI 수사관이 유산한 다른 임산부를 찾아가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아직도 뱃속에 아이가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고.. 이것은 죽은 남편이 집에 돌아올 것만 같아.. 류의 상실감과는 조금 성격이 다른 형태이다.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뱃속에서 자신의 배를 차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영혼이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계속 남아있다는 것처럼 그녀는 말하였다. (사실 그런 대사는 없었지만.. - -; 난 요즘 왜 이렇게 있지도 않은 대사를 짐작해서 만들어 넣는 것일까?-요즘은 너무 생각이 많다)
매 달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생리시의 몸의 감각들에 대하여.. 보통은 '생리통' 으로 압축하여 말해버리고 말지만, 사실 그 기간 동안 오로지 통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통증의 종류도 여러가지지만 그 외의 독특한, 그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감각들 역시 상당한 편. 피가 쏟아져 내리는 느낌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 그 중, 살아있는 동물에게서 막 끄집낸 간 덩어리와 유사한 형태의 피범벅된 살점들이 떨어져나오는 느낌은 묘한 통쾌함을 동반하기도 한다. 생리대가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더욱 긴장하게 되고,모든 신경이 하부기관에 집중되기 때문에 몸의 미묘한 변화는 더욱 크게 감지되곤 한다.
보통 사람들은.. 임신을 한 여성이 느끼는 몸의 변화에만 관심을 기울이지만, 어제 본 드라마는 '유산'이라는 상황에서 내 몸이 어떠한 변화를 거치게 될 것인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어떠한 감정을 유발할 것인지 예상하게 하였다. 유산은 그것이 자연유산이든 인공유산이든, 생리와 마찬가지로 며칠에 걸쳐 자궁벽이 허물어져 내리고 그것이 피와 함께 분출된다고 한다. 일반적인 생리주간이라면 화장실 물 아래로 쌓여가는 피를 바라보는 것에도 담담할 수 있겠으나, 유산을 한 직후라면 그 괴로움이 며칠간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한 달에 한 번씩 떨어져 나오는 자궁벽의 잔해물들이 그저 내 살점이려니, 이제 3일 남았네, 2일 남았네 헤아리는 것으로 족할 그것들이 유산을 한 이후면 '혹시 저것이 아이의 몸체는 아니었을까' 스스로 생각하며 몸서리치고 슬퍼지고 괴로운 일이 되지 않겠는가.. 고통이 그날, 그순간으로 그치지 않고 며칠에 걸쳐 반복하여 찾아온다는 것. 슬픔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유산 뿐 아니라, 생에는 많은 고통이 이와 비슷한 형태로.. 지연되며 환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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