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선형적 사유

경계짓기의 어려움

by 늙은소 2004. 6. 14.

동양(중국문화의 영향권 내의)에서는 육예(六藝)라 하여 禮, 樂, 射, 御, 書, 數를 정신수양을 위한 6가지 기본 덕목으로 삼았다.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 일컫는 많은 분야가 작가의 의식을 대표하는 형이상학적 목적을 담고 있었고, 현실 세계로부터 초월하여 오로지 심상의 피안에 잠재된 의식의 언어를 표출하는 수단으로서의 함축적 언어를 대신해왔다. 특히 성리학적 전통에서의 예술의 평가 기준은 작가 자신의 인격과 학문적 깊이를 빼놓고 이루어질 수 없었으며, 그 결과 우리는 한 사람의 공적인 능력과 결과물을 그의 사적인 측면까지 함께 고려하여 평가하는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함께 평가하는 것에서 넘어서,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을 규제하고 재단하는 경우라 할 것이다. 여기서 그는 판단해야한다. 자신을 사회가 규정한 도덕의 기준에 잘 맞는 인간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런 인간처럼 보이도록 꾸밀 것인가.. 보통의 인간인 우리는 '성인-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성인이 아닌 시대가 요구한 일시적 성인'이기를 포기하고 꾸미는 것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꾸며지지 않는.. 반도덕적 모습은 은폐된다.

가까운 역사를 돌이켜보면 월북했다는 이유로 들어보지도 못하게 된 어느 작곡가의 음악과 소설가의 문학이 있었으며, 친북인사일 리 없다는 누군가의 저작은 노동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음이 밝혀지며 불에 태워질 상황에 처했다. (설마 태우기야 하겠는가 싶지만)

실시간을 자랑하는 인터넷 뉴스는 철마다 연예인 누가 음주운전을 했느니, 대마초를 했느니.. 소란스러워진다. 마치 그가 노래할 때마다 '음주운전자의 혼'을 불어넣기라도 한 것인양, 그의 곡을 방송에 내보내는 것이 영 껄끄러운지.. 그의 음악은 전파를 타지 못하게 마련이다.
...
한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그의 공적인 결과물과 사적인 행보간에 모순이 있을 때, 이 둘을 분리하여 평가해야 옳을 것이다. 말은 쉽다. 분리하자 하니 칼을 들이대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어려움이 늘 있기 마련이다.

정치인, 학자, 교수, 연예인, 예술가 등등.. 직업으로 잘라낼 것인가? 아니면 이혼? 성적 문란함? 아동학대? 변태성욕자? 폭력 전과? 음주운전? 대마초? 부동산 투기? 주식시장 조장? 죄의 종류나 죄질로 잘라낼 것인가? X축에 직업, Y축에 죄의 종류를 놓고 각각 그래프를 그려서 한계선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과연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영화 감독을 예로 들어보자.
영상미를 추구하는 그는 작품을 통해 아름다운 구도와 색채를 선보이며,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사물을 바라봄으로써 시각의 새로운 지평을 선보인다. 이때 그의 사생활이 문란하든 그게 문제가 될 것인가? 그러나 환경보호나 반전, 과도하게 발전해가는 물질문명에 대한 경고가 그의 작품의 주제라면.. 그가 아동학대를 하는 것은 자신의 작품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와 상치되지는 않을까?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

경계짓기의 어려움을 인정한다는 것이 경계가 없는, 공과 사의 철저한 연대책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국은 칼을 들이대야할 선이 있기 마련이고, 그와 함께 철저하게 보장해야할 공적 공간도 필요하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보장해주어야만 할 사적 공간 역시

'보수/진보', '관용/편협'의 공간 개념은 여기서 방향을 달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