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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세이클럽의 숨은 전략

by 늙은소 2004. 6. 17.

98년을 전후로 하여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3파전으로 진행되던 통신세계가 월드 와이드 웹 기반의 인터넷 환경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고속 통신망 보급과 Starcraft 등 강력한 몇 가지 요인이 변화를 부추겼고, 통신의 핵심 컨텐츠 중 하나였던 채팅을 전문적으로 서비스하는 사이트의 등장은 예고된 결과였다.

초기 채팅 사이트의 강자로 등장한 곳은 '하늘사랑-Skylove'이었다. 하늘사랑은 기존 통신망이 제공하던 채팅과, 해외 인터넷 서비스가 시도했던 기능들을 최대한 수용하며 서비스를 구축했다. 대기실 - 채팅룸의 이중 구조를 바탕으로 쪽지, 초대, 귓속말 등과 같은 기존 기능을 모두 갖춘 그들의 서비스는 그러나 아직까지 건재한 통신 서비스과 싸우기에는 부족한 무엇이 있었다. 그들만의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했다. 인터넷의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 채팅은 파란 화면 일색이던 통신 서비스와 차별화된 색다름이었고, 여러 캐릭터가 방 안에서 움직이며 대화하는 아이콘 룸은 인터넷만의 새로운 채팅문화로 여겨졌다. 그러나 하늘사랑의 독주는 오래가지 못하였는데 ‘세이클럽’이 그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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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클럽의 성공요인은 여러 요소들의 복합작용에 근거하기 때문에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용자 대부분은 '작업하기 좋아서 세이클럽을 찾는다'라 답한다. 채팅의 작업성에 있어서 타 사이트의 침범을 허용하지 않고 독주해온 세이클럽의 강점은 작업 상대를 다양하게 검색하여 목록화 할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나이, 지역, 성별과 같은 다양한 검색방식은 작업할 대상자의 범위를 좁혔고, 그 결과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졌다. 이것이 알려진 업계(?) 일반의 생각이다.

그러나 표면화 되지 않은 숨겨진 기능이 있다. 바로 작업 대상자가 좀 더 쉽게 작업에 응할 수 있도록 한 인터페이스이다. 세이클럽 쪽지는 사실 사용하기에 불편한 면이 있다. 그것은 글을 입력할 때 내가 쓰는 글의 전문(全文)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5년 넘게 세이클럽은 이 불편한 쪽지 인터페이스를 고집해왔고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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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이트가 제공하는 쪽지창은 상대의 아이디와 이름(혹은 닉네임), 사진이나 아바타 등의 개인 정보와 Text를 함께 보여준다. 창의 크기가 크고 이미지가 많을수록 서버에 부담이 크기 때문에 받는 쪽지와 보내는 쪽지를 서로 다른 창에서 해결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인 쪽지 설계의 원칙이다. 그러나 그 결과 쪽지를 받은 뒤 답장을 보내기 위해 마우스로 '답장' 버튼을 클릭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마우스 클릭 한 번과 키보드 입력 하나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 사이트의 성공은 마우스의 클릭 수를 얼마나 많이 줄이는가에 있다. 오른손을 이용하게 되는 마우스는 자연스럽게 왼쪽뇌의 활동성을 높여 사고력과 이성적 판단을 작동시킨다. 나의 초대에 응하고, 내가 보낸 쪽지에 답장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상대는 최대한 즉흥적이고 가벼운 판단을 내려야 한다. 즉 마우스의 사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세이클럽의 쪽지는 받은 자리에서 바로 키보드를 이용해 입력할 수 있다. 창이 열리면 상대의 글이 보이고 하단 답장 공간에 커서가 깜박인다. 마우스를 잡을 필요가 없다. '창 닫기'나 '거절하기' 등은 마우스를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답장하는 것 보다 불편하다. 이것은 작지만 놀라운 전략이다.
그러나 이 점 때문에 오픈창의 공간은 부족해졌고, 내가 보내는 글을 한 줄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쪽지 창은 내가 입력하는 글의 일부만 보이도록 설계되었으며, 문장의 앞부분을 확인하며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긴 글을 쓰기에도 부적합하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글 구성도 어렵다.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대화가 가능할 뿐이다. 이러한 불편함이 진지하고 깊은 대화보다는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대화를 유도하였고, 가벼운 만남과 작업이라는 목적에 부합할 수 있었다.

이와 반대로 커뮤니티를 중점적으로 발전시켜온 사이트의 경우는 쪽지의 편집성을 강화하고 전달력의 자유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변화해왔다. 프리챌이 대표적인 예이다. 커뮤니티는 익명성을 배제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일정 정도의 진지함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쪽지는 심사숙고의 결과여야 한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전체를 한 눈에 살펴보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을 넓게 제공함으로써 많은 글을 쓸 수도 있고 편집도 가능하다. 그러나 동시에 마우스의 사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세이클럽의 쪽지는 하나의 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기 때문에 엔터를 칠 필요가 없다. 엔터가 '보내기' 기능과 동일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쪽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마우스를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프리챌의 쪽지는 엔터로 줄바꿈을 하기 때문에 '보내기' 버튼을 마우스로 클릭해야만 한다. 상대의 쪽지에 '답장'을 클릭해 답장 창을 열고, 키보드를 입력해 글을 쓴 다음 다시 '보내기'를 클릭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대단히 많은 두뇌활동을 촉진시키고 이성적 판단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작업 전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의 성격은 바로 쪽지의 기능구현에서 즉각적으로 드러난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그러나 큰 차이라는 점을 인식해야한다.

세이클럽은 쪽지의 기능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보낼 수 있는 글자수를 2배 이상 늘리고, 쪽지를 먼저 보내는 경우 글의 전체 문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바꾸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클럽과 개인 홈피 등 커뮤니티 성격이 강한 컨텐츠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에 부합된다. 채팅은 회원가입을 늘리고 체류시간을 높이는 데에는 도움이 되나, 재방문률과 무엇보다 중요한 매출과는 무관한 서비스이다. 여러 포탈 서비스에서 블로그나 개인홈피 등이 강화되는 것 또한 회원을 모으는 것에 한계점에 달한 사이트들이 재방문률, 즉 중독성을 높이고 새로운 아이템을 판매할 수 있는 서비스로 개인 홈피와 블로그를 활용하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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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여러 포탈 사이트와 각종 서비스 모두 이런 식의 전략을 내재하고 있다. 중독성의 최대치를 목표로 설계된 구조와 기능, 인터페이스를 우리는 대부분 인식하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많은 사이트들은 사용자가 자신의 사이트에 중독되기를 희망한다. 회원가입수를 높이고 동시에 한 명당 체류시간을 높이며 재방문률을 높이는 것, 그것이 사이트의 성공 지표이다. 그들은 이것을 목표로 기능을 개선하고 컨테츠를 신설한다. 인터넷 환경과 관련하여 정보통신법이나 규제 등을 개발, 관리하는 여러 기관에서는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그들은 서비스의 내용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음란성 여부, 청소년 보호, 스팸메일과 명예훼손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내용이 아닌 구조와 기능 또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식해야한다. 쪽지창에 '신고' 버튼이 있다고 해서 그 신고 내용을 저장하는 서버를 따로 구축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 혹은 데이터를 저장하고는 있어도 처리하지 않고 있는 사이트 또한 많다는 것 말이다.


세이클럽의 쪽지는 우리를 조금 더 단순하게 만듦으로써 즉흥적으로 상대에게 답하도록 만든다. 쇼핑몰과 게임포털 등 여러 사이트들 또한 우리로 하여금 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즉흥적이며 즉각적인 행동을 하도록 이끌고 있다. 필요에 따라 그들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문제시 하는 이들은 현재 이곳에 없다. 여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는 과연 언제인가?



* 이 글에서 사용한 '작업'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사전에 나와 있지 않으며, 상대를 유혹해 '어찌해보겠다'는 뜻으로 제한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