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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폭력적 창발

by 늙은소 2010. 3. 25.

1.
귀스타프 르봉은 [군중심리](1895년)에서 집단정신에 포획된 개인은 단일화되며, 집단의 지성은 하락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지지와 비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혁명과 같은 광장에 운집한 대중의 폭력에 있어, 그의 해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적용하는 순간 그 이론은 전체주의를 보좌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개인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21세기는 군중이 될 기회가 많지 않다. [대중의 지혜]나 [이머전스], [집단지성]과 같은 책에서 집단은 광장에 있지 않다. 이들은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하며 하나의 집단 심리에 포획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다만 창발할 뿐이다. 

인터넷에 산재한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는 개인을 단죄하는데 있어 지극히 적극적이다. 다음 아고라나 디씨인사이드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커뮤니티에서 거행되는 처형식은 꽤 볼 만한 스펙타클을 제공한다. 누가 그 목록에 오르는가는 흥미진진하지 않다. 집단의식에 반하는 누군가를 향해 다수의 개인이 한 목소리로 비판하는 풍경은 지루한 복제 과정일 뿐이어서 이렇다할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한, 사건은 사그라드는 게 보통이다. 그리하여 핵심은 집행이 본격화되었음을 알리는 단계. 희생자의 신상정보가 파헤쳐지는 순간에 있다. 그의 익명성을 박탈하고, 거주지와 학교, 부모의 연락처, 직장과 같은 삶의 기반을 공격할 수 무기가 손에 들어온 순간, 집단은 광기에 사로잡힌다. (이것을 얼마나 자주 목격하였던가) 여기에는 주동자도, 명령하는 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개인정보를 밝혀내는 자와 그 정보를 이용하여 상대를 압박하는 자는 같지 않으며, 이를 무기삼아 사과문을 작성하도록 강요하는 자 역시 동일인이 아니다. 누군가는 밝혀진 전화번호로 장난전화를 하고, 어떤 이는 통화 내용을 녹음하여 아프리카로 중계하기도 하며, 또 다른 이는 그가 다니는 학교 게시판 주소를 옮겨와 공격할 기회를 제공한다. 일사분란한 처형준비는 르봉이 주장한 것처럼 결코 열등한 지성이 아니며, 오히려 개인의 지성보다 앞선 우수함까지 드러낸다. 

집단지성에 대한 사회학자들의 이론은 지나치게 낙천적이었던 게 아닐까? 개인이 도달할 수 없는 지성을 구축하며, 지혜로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은 동의하나, 그와 동시에 폭력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도 집단지성은 지극히 지능적으로 작동한다. 롤플레잉게임에 참여하듯 개인은 처벌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하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하여 책임질 필요 없이 즐길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처벌의 향연은 점점 더 놀이를 닮는다.


2.
몇 년 간 꾸준히 사용하던 네이버 블로그 서비스를 정리하고 이곳으로 옮겨온 지 일년 반 정도 되었다.
딱히 이사할 이유는 없었다. 사소한 염증들 뿐.
그 중 하나. 블로그에 가끔 찾아오는 몇 사람에 대한 불편함.

며칠 전 검색을 하며 찾아간 어느 블로그에서 그들과 몹시 닮은 글을 읽으며, 단지 불편하다고 느끼기만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갓 스무살이 된 어느 여학생의 블로그였는데 솔직하며 직설적이고, 잔 꾸밈이 없는 글로 채워져 있었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 있어, 후천적인 훈련을 거친 이들이 격식을 갖추며 보다 화려한 수사를 차용하기 쉬운데, 그곳의 글은 어려서부터 대화를 많이 나누고 자란 사람이 쓸 법한 글이었다. 잘 쓴 것은 아니지만 읽기에 막힘이 없달까. 

그와 동시에 찾아오는 묘한 거부감. 어디선가 익숙한 이 분위기. 
그렇다. 네이버 블로그를 정리하던 시점에 보았던 몇몇 어린 친구들과 참으로 닮아 있었다. 밥 굶을 걱정으로 하루를 사는 서민과는 거리가 먼 유복한 환경, 열린 대화가 가능한 다정하고 지적인 부모, 나눔에 인색하지 않은 일가친척들. 해외 여행과 어학연수, 조기교육을 통해 획득한 우수한 외국어 실력. 문화예술적 경험이 풍부하고 이해도가 높으며, 또래들보다 조숙하고 똘똘하며 야무진 성격까지. 닮아도 어찌 이리 비슷한지.

그녀의 블로그에서 몇 개의 글을 읽은 후, 마음이 불편한 원인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그녀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질투심에 불과한가. 계속 걸리는 무언가가 있는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답답함. 그녀와, 이전에 불편함을 느끼게 한 다른 이들을 비교하며 며칠을 생각하다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의 포스트에는 기이할 정도로 '타인을 조종한 경험'에 대한 기록이 많다.
여기서 조종이라 함은 고도의 심리적 조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무엇무엇을 잘 한다'는 문장을, 'A로 하여금 나에 대해 B라고 말하게끔 할 정도로 나는 무엇무엇을 잘 해내었다'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미묘한 차이. 타인에 대한 평가나 관계에 대한 정의 역시 '이러이러한 생각을 지닌 A를 다른 식으로 생각하게 한 계기로서의 나'로 서술되는 게 보통. 가깝게 지낸 스승과의 추억을 '나에 대해 선입견을 지니고 있던 교사 B가 결국은 내 편이 되어주었다'는 식의 승전보도처럼 기록하니, 불편하다며 멀리 할 문제가 아니다. 교우 관계에 대한 기술에 '자신에 대하여 잘 이야기하지 않던 이들이 나에게는 필요이상 털어놓는다'는 문장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비슷하다. 힘들게 털어놓은 상대의 이야기에 정작 본인은 개입할 의사가 없으며, 다만 '왜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는 것인가'를 힘주어 말한다는 것도 유사. 수평적 관계이기 쉬운 대상에게는 영향력을 행사하였음을, 자신보다 손아래의 대상에게는 압도적 존재임을,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과는 수평적 위치에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이 문장들은 사용된다. 더불어 한글보다 영어 교육을 더 우선하는 환경에서 성장한 탓인지, 영어문법의 영향으로 '나는 B가 C를 하게 하였다'는 표현이 더욱 강조되었던 모양.

즐겁지만 포복절도하지 않으며, 화는 나지만 분노에 사로잡히지는 않는, 좋아하는 것이 많지만 거기에 미쳐버리지 못하는. 그리하여 대상을 조종하거나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결과를 바라보는 것에 탐닉하는 20대라... 기이할 정도로 참 여럿의 얼굴이 떠오르지 뭔가. 물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의 나이는 자신이 또래보다 우월함을 입증하고자 노력하는 시기다. 타인을 분석하여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하려 하는 것도 이 시기에 흔히 빠지기 쉬운 과정. 그러나 이들의 경우에는 이온결합을 통해 제 3의 존재로 바뀌는 관계를 지양하고, 자신은 변화하지 않은 채 타인의 변화를 주도적으로 진행한다는 특정이 있다. 화학결합은 결합의 대상이 누군가에 따라 전혀 다른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나이면서 내가 아닌 낯선 존재에게 자리를 내 주지 않음으로써 안정을 추구하는 나이로 스무살은 너무 빠르지 않나? 

본래 그 나이가 그런 것인지, 시대와 계급, 교육 등 특정 원인에 그 답이 있는지.. 만약 영어식 문장구성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그것이 역으로 말하는 이의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아닐런지. '나는 B가 C를 하게 만든다',  '나는 B가 C라고 생각하게끔 말하다'와 같은 문장이, 그 말의 주인을 '조종하려 드는 자'로 훈련시켜온 게 아닐까. 여러 가능성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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