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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집 잃은 아이

by 늙은소 2010. 5. 14.
1960년 4월 19일, 동아일보는 지금 우리가 '4.19'로 부르는 역사를 기록한다. 그들은 그것이 어떤 이름의 역사가 될 지 알지 못한다. 다만 기록할 뿐. 4면짜리 신문의 한 구석. 전국의 데모 상황과, 이들을 진압하려하는 경찰의 입장을 빼곡히 실은 신문의 구석에서 아이를 찾는 작은 광고를 보았다. - <집잃은아이를찾음>

지금이라면 <미아찾기>라든가 <사람을 찾습니다>로 바뀌었을 광고.

'잃다'는 길이나 방향을 찾지 못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집을 잃는다'는 말은, 집으로 가는 방향을 찾지 못한다는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 집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집과 나 사이의 통로가 사라졌을 때에도 '집을 잃었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 표현에는 '..으로 가는 길'이 생략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시원하고 고소한 콩국수를 팔았던 가게가 어디 있는지 생각나지 않아 길을 헤매면, '콩국수가게 잃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전입신고를 하기 위해 동사무소를 찾아 다니는 사람은, '동사무소 잃은 사람'이 된다.

쓰고보니 이상하다. 길을 잃은 것이지 집이나 가게, 동사무소를 잃은 게 아니지 않나. 집을 빼앗겨 거리로 내몰린 채 가족이 흩어지거나, 전쟁의 포화에 집과 가족이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집 잃은 아이'라는 표현은 '미아'를 대신하지 않는다. 길을 잃어 집에 오지 못하는 아이와, 돌아올 집이 사라져 집을 잃은 아이는 이제 혼용되지 않는다.

'잃다'는 시간이 지남과 함께 분실(상실)의 의미로 축소되었다. '길을 잃다'를 제외한다면 다른 쓰임은 모두 '가지고 있던 것이 사라진다'는 의미로 전환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방향을 찾지 못하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도 잃다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제 거꾸로 '잃다'를 사용함으로써, 그 앞의 말이 소유하고 있던 것임을 강조하는 꼴이 되었다. '친구를 잃다', '신뢰를 잃다'와 같은 말은 우정이나 신뢰로 이루어진 관계가 하나의 소유물이었던 것마냥 의미를 고정시킨다. 친구를 잃는 것은 지갑을 잃거나 노름에서 돈을 잃는 것처럼 내가 손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안타까움이 우선이지 손해여부를 따질 일이 아니라는 거다) 신뢰를 잃는 것 역시 과거에는 소유(심지어 소득)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소유나 손실의 의미로 축소되어버린 '잃다'가, 모든 잃기 전의 상황을 '소유'의 관계로 한정시킨다. 

제 집을 잃은 '잃다'가, 길 위에서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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