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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

재미 없어진 '동이'

by 늙은소 2010. 7. 28.

재미있는 드라마가 없다. 한 동안 재미있게 보았던 [동이]. 왜 재미가 없어졌을까?
선한 집단과 악한 집단의 대립으로 구도가 결정되어 있음에도 [동이]에게 설득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보다 '장희빈' 세력의 몰락을 지켜보는 '동이'쪽 사람들의 시선이 영 마땅치 않다. '장희빈'이 세력을 획득해가는 과정이 올바르지 못하였고,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동이'를 죽음으로 내몰려 한 것이 분명한데도 희빈에 대한 동이의 싸움이 왜 정당방위가 아닌, '장희빈'과 별 다를 게 없는 세력다툼으로 여겨지는 것인가.

문제는 동이를 둘러싼 세력이 장희빈의 세력에 비해 끈끈하지 않으며, 뜻이 같을 뿐인 동지적 관계에 더 가깝다는 데 있다. 장악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낸 영달과 황주식을 제외하면 동이의 주변인물들은 그녀가 여러 사건을 만나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 명씩 획득한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감찰부의 정상궁과 정임은 수사 해결에의 의지와 정의관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한 편이 되었을 뿐, 그 이상의 관계를 보여주지 않는다. (정상궁과 정임이 늘 붙어 있어야 할 이유도 없어보인다) 종사관 서용기는 동이의 재능과 빠른 두뇌를 신뢰하지만 그녀의 편에 서기보다는, 자신이 뜻한 바와 같은 방향에서 만난 동이와 함께 행동할 뿐이라는 인상이 짙다. 그 때문에 언제든 뜻이 달라지거나 뜻을 이루는 과정이 서로 다를 때 언제든 돌아서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이들을 묶어주는 끈은 '동이'가 아니라 '중궁전의 주인자리'라는 정치적 위치에 대한 권력싸움이다. 그리고 그런 점 때문에 동이를 둘러싼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스타워즈4-새로운 희망'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는 제국으로부터 우주 연합을 구하겠다는 거대한 목표를 위해 자신의 별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다만 3차원 영상으로 본 레아 공주가 예뻤기 때문에, 또한 농사나 지으며 사막에서 평생을 살 생각을 하니 답답함이 절로 들어 핑계김에 일탈을 시작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을 키워준 삼촌 부부가 살해되긴 하지만 말이다)

보통 영웅담은 늘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자신이 영웅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소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나며,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 여러 사람의 소박한 꿈이 합쳐지는 과정. 심장이 필요한 양철로봇과, 용감해지고 싶은 사자 따위와 긴 여행을 떠나는 도로시처럼. 목표가 같아서 함께 하는 게 아니라,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관계들로 영웅담은 시작한다. '내 꿈을 이루는 것을 네가 도와주면 네 꿈을 이루는 걸 나도 도와줄게' 뭐 이런 식? 그런 소박한 행동과 작은 의지가 모여 거대한 힘을 무너뜨리는 게 영웅의 이야기다.

그런데 [동이]는 원대한 단 하나의 목표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합심하며 영웅을 만드는 구조를 취한다. 장희빈의 죄를 밝히고 인현왕후를 복위시키는 것. 이들은 이것만을 위해 몇 년을 함께 해 나간 동지가 아닌가. 그리하여 동이의 사람들은 그저 정치적 관계로 만난 하나의 세력으로 느껴질 뿐이다.

반면 장희빈 세력은 피로 이어진 가족이며, 같은 죄를 저지른 공범이자, 한 사람이 빠지면 다 함께 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관계들로 맺어진다. 그들은 오열하고 모든 죄를 자신이 뒤집어 쓰려 하며, 동료의 파멸을 누구보다 앞장서 막아내려 애를 쓴다. 그런 절박함이 동이쪽 사람들에게서 느껴지지 않으니.. 이 드라마가 재미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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