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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101

수면의 시간 남들은 게으름을 포장하는 수단이라며 내 말을 무시했지만 나는 종종 그리고 자주 수면의 절대 필요량이 존재한다고 믿어왔다. 머리 숱 적은 사람이 털의 절대량 운운하며, 민망하게 벗겨진 머리카락 대신 가슴이나 몸에 털이 덥수룩하게 자라나고 있음을 강조할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겐 저마다 주어진 필요 수면량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을까? 평생 16만 시간 정도는 자야 한다는. 어려서 나는 잠이 많아 어머니의 걱정과 잔소리를 샀다. 6시간씩 자며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상이 제대로 영위되지 못함은 물론이며,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8시간은 자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 날이 중간에 끼어든다면 그 날 자지 못한 양 만큼 주말에 보충하여 잠을 자야만 일상이 지속될 수 있었다. .. 2009. 2. 27.
영화 감상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 것인가 요즘 DVD를 사모으느라 열중하고 있는데, 문득 2~3년 안에 DVD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걱정되기 시작한다. 옆의 후배에게 어찌될 것 같으냐 의견을 물으니 일단은 블루레이가 들어온 다음 영화도 결국 음악처럼 스트리밍 서비스로 바뀌지 않겠느냐고 답한다. 보고 싶은 영화를 검색한 다음 네트워크를 통해 수신하여 보는 방식. 이미 IPTV가 상용화된 마당이니 홈시어터를 갖추고 검색하여 원하는 영화를 TV로 바로 연결해 보는 것이 뭐 새로운 일이겠는가. 검색하여 영화를 바로 보는 방식이 바꾸어놓을 삶의 풍경은 어떠할까? '검색 서비스'의 문제는 검색을 하기 위해 최소한의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데 있다. 영화 제목을 알고 있거나, 감독이나 배우의 이름과 같은 핵심정보를 알고 있어야 나는 그 영화.. 2009. 2. 19.
김수현 드라마의 한계성 얼마나 많은 김수현 드라마를 보고 자란 것일까? 기억의 시작은 ‘사랑과 진실’이다. 뒤 이어 ‘사랑과 야망’, ‘배반의 장미’ 같은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나는 겨우 10살 이었지만, 드라마 속 세상은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타인에 대한 집단적인 공격이 있는가 하면, 독기어린 대사와 함께 홀로 버티는 주인공이 있었다. 언제나 주인공은 부러지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죽어버릴 것처럼 서슬 퍼런 태도로 일관하였는데, 그 때는 그게 왠지 멋있어 보이기만 했다. 그녀가 드라마를 쓰기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건만, 김수현 드라마의 인물들은 여전히 타협을 모른다. 드라마는 늘 적당히 눈감아주는 일 없이 자기주장을 펼치느라 소란스럽다. 주 조연 모두가 자기 확신에 차서 토론장 나온 사람마냥 ‘A는 B이다’를 단정하듯 말한.. 2007. 6. 9.
형사 가제트의 비애 며칠 전, 코엑스몰에서 DPG 전시회가 열렸다. 2시간 조금 더 걸려 전시장을 둘러보고 자료가 될 만한 카탈로그를 챙겨서 나오며 후배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는데, 뜬금없이 '가제트 차'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이랬다. 형사 가제트가 타고 다니는 차는 하늘을 날아다녔던 것인가? 자동차 겸 비행기였던 것이 얼핏 기억이 난다. 어쩌면 물에서도 움직이는 수륙양용이었을 수도 있다.하긴 가제트의 특기는 '만능 가제트'라 외치는 게 아니었던가. 자동차라고 그러지 않겠느냐며 오래전 보았던 만화를 서로 떠올렸었다. 나는 사실 그 만화를 좋아하지 않았어. 라고 뒤늦게 커밍아웃 하는 사람처럼 나는 고백했다.만화라면 다 좋아할 나이였던 그 때에도 나는 가제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가제트를 보면 비애.. 2007. 5. 21.
조조할인 영화관람 아침잠에 욕심을 부리는 편임에도 불구하고,조조할인은 꽤 매력적인 상품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조 영화 관람은 썩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천성이 게으른 편이기도 한데다가 워낙 즉흥적인 성격이어서, 타인과약속을 한 경우 아니고서는 조조로 영화를 볼 계획 같은 건 세우지도 않았었다. 극장과 멀리 떨어진 삶도 물론 한 몫 하였다. 9시 30에서 10시 30분 사이시작하는 영화를 보려면 대체 몇 시에 일어나야 되는 것인가. 그 생각만으로도 덜 깬 잠의 피로가 몰려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집 근처에 멀티플렉스 극장이 세워졌다. 대체 왜 그곳에멀티플렉스가 생긴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아하기만 한 장소였다. 건물 주인이 영화광인가? 어차피 임대 나가지도 않는 외진 곳, 그나마 극장을 해야 손해가.. 2007. 5. 11.
프로들의 원형경기장 FTA 협상이 막바지였던 며칠 전, 함께 일하는 후배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시위하는 농민들을 비췄고, 후배는 '저렇게 반대해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농업이든 어떤 분야이든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성공해야 그 분야도 살아남는다는 논리였다. 울컥하는 마음에 한참을 후배 앞에서 떠들었다.예전에는 나도 그랬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믿을 것은 머리 뿐이었기에.. 내 능력과 내 실력, 내 열정과 노력으로 나보다 앞서 있는 사람들을 따라잡아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러기 위해 경쟁을 긍정적인 것으로 보았고, 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세계가 나에게 유리하며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 믿어왔다. 뒤쳐지는 사람, 조직에 방해가 되는 존재는 사라져도 될 것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바.. 2007. 4. 10.
이해를 구한다는 것에 대하여 납덩이처럼 무거운 마음이 그 무게에 미치지 못하는 작은 이해를 구하기 위해 사용될 때가 있다. 삶에는 작은 이해를 구해야하는 때가 종종 발생한다. '개인적인 사정'이라는 말로 곧잘 포장되곤 하는 사건들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애매한 사연들을 감추고 있기 마련이다. 설명이 곤란한 것은 그것이 개인적인 치부와 관련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내용보다 말하여지는 방법의 문제가 더 복잡하여 입을 다물어버리게 되기도 한다. 말을 해야할 것인가의 갈등은. 주어진 규정을 어기거나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을 때에도 찾아온다. 비록 그 크기가 작다 할 지라도 이해를 구하는 것은 결국 거래와 같아 적당한 댓가를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다. 그 댓가란 대체로 왜 그리 하였는지 자신을 이해시키라는 요구와, 다시.. 2007. 2. 14.
다섯째 아이 -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세계문학전집 27)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도리스 레싱 (민음사, 1999년) 상세보기 지난 몇 년 동안, 구매하는 책의 수는 읽는 책의 수를 상회하였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을 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책 읽는 열정이 미치지못할 뿐이다. 5~6권을 사면 그 중 2권 정도 읽는 속도로 몇 년을 보내다보니, 읽지못한 책의 수가 100권이 넘는다. 가끔은 책장이 무덤처럼 느껴진다. 책은 비석이 되어 자기의 자리를 지킨다. 이름으로만 기억되는 사람들처럼, 내 책장에는 이름 외에는 읽혀지지 않은 책들로 채워져 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모두 모으기라도 할 것처럼 매 구매시 한 두권씩 끼워넣고 있다. 할인폭이 높고 양장이 아니어서 가격이 저렴한 편인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4~6천원대.. 2007. 2. 5.
[하얀거탑] - 괄목상대에 대하여 생각하다 드라마 뿐 아니라, 영화나 소설에 있어서도 작품을 읽는 방법과 기준은 매우 다양하다. 감독과 작가의 주제의식을 문제 삼아 그들의 사상과 주장하는 바를 논할 수도 있으며, 반대로 작품에 반영된 시대상을 통해 우리들의 자화상을 찾는 것도 가능하다. 전자의 경우는 감독론, 작가론처럼 타인을 분석하고 그를 특징지우는 방법으로 작품과 일정 거리를 둔다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는 작품 속의 인물과 사건을 보편화함으로써 인간 전체, 혹은 사회의 단면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모든 작품들은 완벽한 이분법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나와 전혀 다를 것 같은 개인에게도 유사성은 있는 법이고, 누구에게나 통용될 것만 같은 보편성에 끝내 부합하지 못하는 개인들도 있는 법이니.. 하얀거탑을 보며, 처음 무척 흥분하였던 것.. 2007.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