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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형적 사유101

360cities : 부용정과 어수문 * 이 글은 구글 어스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360cities'로 가상체험한 다음, '네이버백과사전'에서 부가정보를 찾은 후 쓴 것이다. 가본 적 없는 장소를, 사진과 몇 가지 정보들만 가지고 묘사하는 훈련이라고 할까. 대체 왜 이걸 훈련씩이나 하냐 물으면 할 말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를 이런 식으로 묘사해보는 일도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 아니겠나. 창덕궁 부용정 동서와 남북의 길이비가 완만한 부용지(芙蓉池)는 물이 깊지 않음에도 그 속을 내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주변의 나무를 훑어 그 잎을 수면에 띄우니, 이를 즐기지 않는 자에겐 영락없이 죽은물로 느껴질 수 있는 일이다. 못의 사면을 두른 장대석은 단별로 교차하며 쌓였고, 같은 방식으로 원형의 인공섬이 소박하게 자리.. 2010. 5. 4.
순간이동 Vs. 인간복제 * 사용한 이미지는 리뷰를 위한 것으로, 권리는 제작사에 있습니다. '엔터프라이즈' 호의 승무원들은 순간 이동 기술을 통해 원하는 장소로 이동한다. 그들은 이것을 '전송'이라 부른다. 이곳에 있던 내가 저곳으로 이동했음을 강조하기에 '전송'은 더할 나위 없는 표현이다. 그러나 기계가 전송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재조립을 위한 데이터 뿐이다. 그들은 어느 곳으로도 이동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기계는 신체 구성 물질을 스캔한 뒤 이를 데이터로 전환해 도착지점으로 전송한다. 전송기 위에 올라선 신체는 원자단위로 분해되며 비물질화가 진행된다. - 그들은 그렇게 소멸한다 - 그와 거의 동시에 도착지점에서는 전송된 데이터에 따라 새로운 신체를 구성한다. 여기서 무엇으로 신체를 만들어내는가는 중요하지.. 2010. 4. 29.
계량기 보는 남자 블로그 이웃되는 분의 글을 읽던 중, 전기 계량기를 외부에 노출하며 사는 삶이 낯설어졌다. 전에 살던 오피스텔은 전기와 수도, 난방, 온수 계량기가 모두 집 안에 있어 한 달에 한 번 이를 기록해 제출해야 했다. 이곳은 복도형 아파트로 집집마다 복도에 계량기가 노출되어 있다. 누구나 다른 집의 전력 사용량을 확인하는 게 가능한 구조다. 거주인이 집을 비웠을 때에도 검침원이 자기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계량기를 외부에 노출시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전력이나 수도, 난방, 온수 사용량'같은 정보가 비밀이 보장되어야 할 사적 정보의 영역으로 취급될 가능성은 없는지, 그것을 감추기 바라는 이들이 있다면 그 속사정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계량기 보는 남자'를 상상한다. 그는 취미 삼아 남의 집 .. 2010. 4. 24.
현실이 스릴러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웬만한 스릴러를 능가하는 요즘. 화요일 PD수첩이 수소폭탄이었다면, 오늘 보도된 추적 60분은 빙상장을 향해 레이팜탄을 투척한 셈이다. 전 국가대표와 가족, 전 현직 코치, 심판, 빙상연맹 관계자, 현 국가대표들이 저마다 주장을 하고, 서로 다른 말을 주고 받는다. 방송은 제목처럼 60분을 꼬박 할애하여 사건을 보도하였는데, 이제 나올까 저제 나올까 기다린 부분이 끝내 다뤄지지 않는다. 카메라는 연신 뱀의 다리만 쫓을 뿐이어서 대체 그 몸통과 머리는 어디로 갔는지 의아하다. 선수들 간 담합이 있으며 그것이 쇼트트랙계에서 관행처럼 여겨진다고 방송은 보도한다. 그런데 그 원인을 '우리나라 선수들의 기량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으로 일축하다니. '추적 60분'의 보도 태도는 폭탄은 던졌으되 .. 2010. 4. 22.
복권 당첨의 부작용 지난 주 수요일, 기차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걱정에 깊이 잠들지 못했다. 꿈에서 꿈을 꾸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하는, 이중 꿈의 함정에 빠져들었다. 꿈에서 나는 잠이 들었고 복권 당첨 번호가 선명히 각인되는 꿈을 꾼 후 깨어났다. 그 번호 그대로 복권을 사야 하는데 설마 당첨이 될까 싶어 어물쩡 하루를 넘겨버렸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그 번호가 사실임이 입증되고 말았다. 꿈 속에서 어찌나 이를 한탄하였는지. 그러나 모든 것은 꿈이었다. 기차 안에서 꿈에서 꾼 꿈 속의 번호가 정확히 어떤 수인지 떠올려보려 했다. 이미 그 수는 6개에서 8개로 늘어났다. 22~26 사이에 숫자가 3개가 나왔는지 4개가 나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고, 7과 9가 혼동되니 복권에 6개의 숫자를 .. 2010. 4. 19.
steampunk 1. 80년대 중반, 충격의 미니시리즈 'V'가 방영되었다. 드라마 방영 내내 남자애들은 몇몇 여자애를 '다이애나'라 부르며 공격했다. 한 반에 다이애나가 너무 많아지자 그 다음에는 다이애나 1, 다이애나 2... 이런 식으로 번호가 매겨졌다. 우리 반만 해도 9번까지 다이애나가 차고 넘쳤다. 공격은 단지 호칭에 그치지 않아, 몇몇 겁없는 남자애들은 다이애나로 불리는 여자애 앞에서 쥐를 삼키는 연기를 시연하기도 했다. 성적 매력이 충만한 다이애나의 얼굴이 벗겨지며 파충류의 피부가 드러났을 때,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어쩌면 소년들은 다이애나를 향한 성적 욕망에 수치심을 느꼈고, 자신을 속인 그녀에게 분노를 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평소 호감을 느끼면서도 이를 표현하기엔 두려운 여자아이들에게 .. 2010. 4. 12.
오만과 편견_1995 BBC 미니시리즈 1.오만과 편견 : BBC 미니시리즈(1995)1995년작 BBC 6부작 미니시리즈를 밤 11시에 보기 시작해, 해 뜰 무렵 마무리지었다. 책은 가지고 있었으며(민음사)-몇 년 간 읽지 않은 채-, 케이블 TV에서 몇 번이나 영화를 방영했음에도 계속 미뤄두었던 [오만과 편견]. 6편을 며칠에 걸쳐 나눠보려던 애초의 결심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로 상당히 흥미진진한 전개가 이어졌다. 경박하고 저속한 가족과 주변인들은 드라마 보는 내내 적응하기 힘들 정도. 그 점이 오히려 시대와 문화, 공간을 초월하는 편재적 고통이려나. 여주인공인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나 '위컴'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탈 시대적 존재다. 이들은 18세기의 마감이 임박한 빅토리아 시대를 100년 후에나 존재할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무.. 2010. 4. 3.
말하지 않는 훈련 학교의 특성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학부시절 과제 발표할 일이 많았다. (인문대에서 진행하는 교양 수업의 경우에도 학생들의 발표를 유도하는 수업이 많은 편이었다) 전공수업의 경우는 정도가 더해, 이론수업은 조별 보고서 제출과 발표로. 실기과목은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프로젝트의 방향을 각자 발표하고 결과물 역시 학생들 앞에서 공개 평가한다. 이런 평가 시스템은, 과제를 낸 교수가 학생을 평가하는 것과 동시에 수업을 듣는 학생들 역시 서로의 능력을 평가하게 만든다. 누가 재능이 있는지, 누구의 감각이 뛰어나며 누가 촌스러운지, 노력을 많이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등등. 그 뿐 아니라 발표를 통해 개인의 언변과 카리스마, 지적 능력, 토론의 내공 같은 것이 아이들 사이에서 평가되곤 하였다. 그 시절.. 2010. 4. 1.
폭력적 창발 1. 귀스타프 르봉은 [군중심리](1895년)에서 집단정신에 포획된 개인은 단일화되며, 집단의 지성은 하락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지지와 비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혁명과 같은 광장에 운집한 대중의 폭력에 있어, 그의 해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적용하는 순간 그 이론은 전체주의를 보좌하는 역할을 떠맡는다. 개인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21세기는 군중이 될 기회가 많지 않다. [대중의 지혜]나 [이머전스], [집단지성]과 같은 책에서 집단은 광장에 있지 않다. 이들은 서로 얼굴을 알지 못하며 하나의 집단 심리에 포획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다만 창발할 뿐이다. 인터넷에 산재한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는 개인을 단죄하는데 있어 지극히 적극적이다. 다음 아고라나 디씨인.. 2010.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