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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bas Kiarostami 색을 빼앗긴 풍경은 원근감을 상실한 채 부조로 남는다. 깊은 바람의 소리, 속삭이는 음성들.. 때로는 웅성이는 소음이 하나의 화음을 이루기도 한다. 그들은 나무라기보다는 균열에 가까우며, 이곳은 겨울이라기보다는 다시 벌어진 상처에 가깝다. 2005. 12. 8.
La Jetee - 깊은 어두움, 그리고 시간 정지된 시간과 흐르는 목소리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한 남자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한다. 세계대전의 파괴가시작되기 이전그에게마지막 남은기억 속에는,흑백의 강한 대비를 이루며쓰러지는남자와 그것을 지켜보는 여자가 있다. 뒤이어 시작될 세상의 파괴는 파편화되는 폭발로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형태가 부서지는종말은 자신의 부피를 유지하지 못하는 파괴이기에 허무함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면적을 유지한 채 곡선을 그리며 쓰러지는 생명은 무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는 과거로 돌아간다.그리고 그곳에서그녀를 만난다. 동물원과 공원을 산책하며 두 사람은 세계가 파괴된 이후 다시는 볼 수 없게될 생명의 활기찬 움직임과 빛의 산란을 향유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 주위를 햇빛이 감싸고 있지만, 흑.. 2005. 11. 24.
토니 타키타니 - 흐르는 직선 사이 고정된 자아 토니 타키타니 감독 이치카와 준 출연 미야자와 리에,오가타 이세이,유미 엔도,니시지마 히데토시,타카후미 시노하라 개봉 2005.09.22 일본, 76분 그는 흐르는,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직선 사이에 고정되어 있다. 시선은 시간을 따라 이동하지만, 공간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되돌아와 서 있을 뿐이다. 반듯한 직선과 직각을 이룬 공간. 그 안에 스스로를 유폐시킨 것은 토니 타키타니, 그 자신이다. 그의 아버지가 중국 본토의 감옥에 갇혀 있던 것과 동일하게, 그는 반듯한 사각형 안에 자신을가둔 채 살아간다. '새가 바람을 두른 것'처럼 옷과 조화되는 그녀의 모습은 그에게 하나의 떨림이며, 직선에 파동을 부여하는 자극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치명적이다. ... 에이코가 사라진 자리. 새가 사라진 허공의 바람. .. 2005. 11. 24.
카페 뤼미에르_도시의 폐곡선 카페 뤼미에르 감독 허우 샤오시엔 출연 히토토 요,아사노 타다노부,하기와라 마사토,요 키미코,코바야시 넨지 개봉 2005.10.20 일본,대만, 103분 영화를 보고난 뒤에야, 이 작품이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임을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떠올린 것이 지극히 당연했음을 깨닫는다. (사실 오즈의 영화는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며 '오즈'를 떠올렸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카페 뤼미에르는 오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공경을 담은 영화다. 그러나 많은 평론가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오즈의 영화방식을 답습하거나, 마냥 그것을 뒤따르기만 하지 않는, 변화된 모습이. 이 영화에 담겨있다. 영화에서 나는 도시의 폐곡선을 발견한다.. 2005. 11. 15.
떠날 때는 내게 말을 해줘, 내가 알 수 있도록 이터널 선샤인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짐 캐리,케이트 윈슬렛,커스틴 던스트 개봉 2005.11.10 미국, 107분 서로에 대한 경멸과 후회로 남은 두 개의 테이프를 딛고, 그들은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다시 동일한 기억을 채우며 똑같은 어긋남을 반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해피앤딩이 아니다. 내게 남은 것은 물음표 뿐이다. 결국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며.. 비슷한 방법으로 과거를 잊기 위해 노력하고 그 기억 위에 새로운 경험을 오버랩하며 살아간다. 어느 순간 과거는 완벽할 정도로 깨끗하게 지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방심하는 사이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과거가 현재를 위협하기도 한다. 그를 기다리며 들었던 음악, 그에게 빌려주었던 책, 함께 밥을 먹었던 식당.... 2005. 11. 6.
좌표로 본 근대 미술의 역사 예술을 이러한 맵에 위치시킬 수는 없을까? 그들에게는 다소 억울한 일이겠으나, 상대적으로 위치지을 수 있는 영역을 정의하고 이를 다시 세분화한다. 이러한 '위치짓기'를 특정한 분야에 종속시켰을 때 공간은 재확장할 것이다. 분야를 미술사로 한정하고, 그 안에서 몇 개의 사조를 다시 배치한다. 세로축을 '시간'으로 정의한 다음 각 요소를 시간순에 의해 배치시켜보도록 한다. 서양 미술사의 주요 흐름은 르네상스 이후 크게 변화하여 현실계에 대한 재인식과 함께 표현방식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이 흐름이 19C후반 이후 급격히 변화하였는데, 외부세계에서 내부로, 묘사에서 추상화로의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선사시대의 단계에까지 거슬러올라갈 때 이 흐름은 스프링과 같은 형태를 이루며 회전하게 된다. 나선형을 이루.. 2005. 9. 25.
표현주의 회화와 만화의 관계 * 2000년에 심심풀이로 썼던 글 일부 * .................................................... 20세기 거대한 반동의 물결은 예술분야에서 인상주의의 부정으로 나타난다. 이 전환은 르네상스 이래 다른 어느 스타일 변화보다 더 심각한 예술사상의 단절이라 할 수 있다. 이제까지예술은 자연주의적 전통을 전면으로 부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형식주의와 반형식주의 사이에서의 변동은 늘 있어왔지만 자연에 충실하고자하는 예술의 과제는 중세 이래로 지켜져 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19세기말에 등장한 인상주의는 4백년간 계속되어온 예술관의 종착점이었다. 인상주의 이후 예술은 처음으로 현실의 표현을 포기하였고, 고의적인 왜곡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려 했다. 물론 인상주의.. 2005. 9. 23.
웰컴 투 동막골 웰컴 투 동막골 감독 박광현 출연 정재영,신하균,강혜정 개봉 2005.08.04 한국, 133분 . 역사는 가상의 공간 안에서만 비로소 화해를 한다. 영화에 빠져들지 못하는 최근의 증상으로 인해, 나는 어느 인물에게도 이입되지 못한 채 동막골 주변을 서성일 뿐 그 안에 동참할 수 없었다. 나에게 그곳은 비현실적 공간일 뿐, 역사의 순간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의 이탈 속에서라야 우리의 화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 하다. 공동의 적(맷돼지)을 함께 무찌르는 과정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 이익을 나눔으로써(바베큐- -;;) 동질감을 확인하는 식이다. 민족주의가 국수주의, 혹은 군국주의로 어긋나버리고 있다는 비판은 달리 보면.. 그러한 왜곡된 정서 외에는 우리가 하.. 2005. 8. 22.
우주전쟁 - 공포와 마주하며 걷기 우주 전쟁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톰 크루즈 개봉 2005.07.07 미국, 116분 '외계생명체'라는 개념은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이 전체가 아니며, '지구'라는 이름의 경계로 이루어진 하나의 공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선과 악', '신과 인간', '죽음과 생명', '파괴와 창조'와 같은 이원적 개념들이 이로부터 두 개의 이질적 공간에 흡수되었다. 이것은 마치 역할놀이와도 같다. 외계인들이 창조한 지구를 인류가 파괴하는 형태의 역할극이 있는가 하면, 지구를 파괴하려는 외계인들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영웅적 인간형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이 선이며, 누가 영웅인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극한의 대립형질들 사이의 연결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있다. '선'이.. 2005. 7. 29.